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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전 석불이 모셔져 있는 강변의 절, 용화사

커피믹스 2010. 12.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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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용화사라는 절입니다.


사진속의 대웅전이라는 글자가 보이시나요? 보통 대웅전은 그 절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기 용화사의 대웅전은 작습니다. 작지만 용화사는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작지만 저기 대웅전 안에 들어가 보면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금으로 된 불상입니다.



그렇지만 용화사 대웅전 안에 들어가 보면 석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불상이 반전의 주인공입니다.



이 불상은 보물 제491호 석조여래좌상이며 1400년 된 것입니다.

마치 석굴암 속에 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석조여래좌상과 마주하니 그 포스가 엄청납니다. 오랜시간 역사가 묻어 있는 불상이라 그런지 대웅전

내부에서는 더 긴장하게 됩니다.



용화사 석조여래좌상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항마촉지인여래상으로는 양산에서는 유일한 예에 속한다.

원래는 광배는 파손되어 있었고 불상 전체에는 백색의 호분이 두텁게 덥혀 있어 원형을 알 수 없었으나,

광배와 대좌를 완전하게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수리되었다.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얼굴과 신체와의 비례가 적당하며 상체가 듬직한 편인데 볼륨감과 입체감을 더하기

위해 아래로 내린 오른팔과 신체를 분리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불상의 뒷면을 감싸고 있는 거신광배는 이 불상에서 가장 화려하면서 조각적으로도 우수하다.

본존상의 윤관을 따라 돋을새김의 윤곽선을 새기고 정상의 화불을 정점으로 좌우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상과 구름을 새겨놓아 마치 본존상이 구름위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광배의 뒷면에는 하늘에서 하강하는 천인상 2구가 음각되어 있는데 통일신라의 불상 가운데 광배의 뒷면에

공양천인상이 조각된 것은 이 불상이 유일한 예이다.

광배와 대좌의 장식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본존불은 옷주름이 단순화 되면서 얼굴에는 무표정한 모습을 띠고

있으나 상체의 볼륨감을 강조하려는 경향 등은 사실주의 양식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9세기에 시작되는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불상은 원래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지에 있었다가 용화사 근방낙동강변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에 현재의 자리로 옯겼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여기 용화사는 요산 김정한 소설의 수라도의 배경으로도 유명합니다.

수라도(1969)는 일제강점기에서 광복에 이르는 전환기의 전통 양반가인 허진사댁의 변모를 민족문제와

결부시킨 김정환의 대표작이다.민족의식과 근대적 합리주의를 통해 시대적 혼란을 헤쳐가는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가야부인은 유교와 불교의 조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애, 남녀평등의 실천등을

통해 한국문학이 창조한 가장 매력적인 형상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원동면 화제리는 수라도의 주무대이다. 작품에는 이곳의 여러지명들이 등장하는데 모두가 실제명이면서

마을의 배치와 거리감까지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오봉선생댁은 명언마을이 위치하며 대밭각단은 죽전마을, 미륵당은 용화사,냉거당 다리는 화제교이며

태고나루터는 토교마을 근처에 있었다. 작품속의 공간이 실제 공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

일대는 요산소설중 가장 명확하게 현존하는 문학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용화사 여기저기를 다 볼 즈음 용화사 주지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아주 젊으신 분이었고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뒤의 병풍속의 그림도 직접 그리신 거라고 합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이었는데 따뜻한 보이차를 우려주시더군요.



거기다 따뜻한 밥까지 얻어 먹었습니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용화사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라고 합니다.

앞에는 강이고 그 옆으로 기차가 지나갑니다.

가끔 기차소리에 놀라기도 하는데 곧 ktx 가 옮겨 간다고 하니 조용해 질것입니다.

가을이라 좀 쓸쓸한 느낌이었는데 봄에는 마당에 벚꽃이 활짝 피어 아담한 절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용화사는 작고 소박하지만 색다른 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