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1

안동하회마을을 다 보여주마 (1편)

커피믹스 2010. 12. 1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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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의 어느날, 충북 제천을 다녀오는 길에 안동 하회마을을 보고 오기로 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은 지인이 다녀오고 나서 참 멋지더라는 곳이라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의지해 하회마을을 찾아가는 중 반갑게도 하회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시야에 드러났습니다.


" 야 ! 길이 너무 이쁘다. " 

" 아니 하회마을은 가는 길도 이렇게 멋진거야? ?? "

우리는 감탄에 감탄을 마지 않습니다. 하회마을은 아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거 같습니다.

차를 세우고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시간이 촉박해 목적지인 하회마을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여름을 준비하는 5월의 하늘은 정말로 쨍했습니다.
하회마을의 특색을 알리듯 갓을 쓴 양반이 익살스럽게 가로등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에 들어서면 하회세계탈박물관이 있고 음식점이 몇개 있습니다. 하회마을을 가려면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하회마을안으로 좀 더 올라가야 합니다. 날씨도 덥고 해서 버스를 탓습니다. 요금은 500원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 버스로 한 5분 정도 걸렸으니까 도보를 해도 무방할 거리입니다.


버스가 하회마을에 관광객들을 내려주었습니다.
하회탈이 정승에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 안동 하회마을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합니다.


하회마을은 아주 넓은 평지이며 넓은 밭이 있고


논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단지 차이가 난다면 고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하회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사는 집도 있기 때문에 관람을 할 때 주민에게 방해가 되게 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문이 닫겨진 집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거나 지나치게 시끄럽거나 해선 안되겠죠.
개방된 고택들만 봐도 충분합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하동고택입니다.

이 집은 류교목(1810-1874)이 헌종 2년 1836에 지었으며 하회마을 안에서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 하동고택이라 부르게 되었다.조선 중기 이후에는 남녀를 구별하는 유교윤리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와 남성들의 공간인 사랑채를 구별하여 집을 짓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집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서쪽으로 꺾여 나오게 지은 사랑채가 이어져 弓자 모양을 하고 있다. 따로 떨어진 대문간재가 본채와 달리 초가로 지어져 소박하고 정겨운 모습이다.


고택의 초가지붕과 흙담벽이 너무 정겹습니다.


하동 고택을 빠져나와 


툇마루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어봅니다.
애들은 더위에 지치는지 둘째는 사진보다는 아이스크림이 최고입니다.



다시 힘을내 누런 돌담 사이를 걸어봅니다.
하늘은 파랗고 온통 고택과 누런 돌담들, 더워서 그런지 하회마을은 몇배나 더 커보였습니다.


문이 열린 고택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누런 흙담아래 핀 꽃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순간 도시의 빌딩을 떠올려보니 왠지 마음이 성급해집니다.
" 바쁠수록 돌아가라 " 안동하회마을 풍경은 그 자체로도 너무 매력적입니다.
꽃이 피면 핀대로 나무가 우거지면 우거진대로 마음의 중심을 잃지않는 모습 같아보입니다.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고 


누런 돌담길 사이로 여행은 계속됩니다.



길을 따라 계속 보이는 기와집입니다.


초가집도 간간이 보입니다.


대문앞에는 트럭이나 승용차가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이 집은 양진당입니다.

이 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14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여러 대에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대종택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문중의 모임을 이 곳 사랑채에서 가진다.'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산 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 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양진당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나무 기둥만 봐도 오래된 고택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맛 닿은 양진당 모습입니다.

우리는 풍산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을 보고 충효당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