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여행이야기1

안동하회마을을 다 보여주마 (2편)

커피믹스 2011. 1. 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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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당을 둘러보고 충효당에 도착했습니다.
충효당 입구에서 쉬고 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초여름을 맞이하는 5월의 햇살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몇개나 먹었는지 모릅니다.



쉬고 있는 무리를 지나 활짝 열린 충효당문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와와 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과 어우러진 게 너무  파랗고 맑습니다.



충효당은 나무들이 있어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충효당은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유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유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유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을 앞면으로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다


충효당에는 소나무가 많이 있는데 그 모습이 청아하고 기품이 넘칩니다.
동양화에 나오는 그 소나무의 모습입니다.



한가지에서 15개가 넘는 가지를 뻗은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가지가 빙글빙글 꼬이면서 자란 나무도 있습니다.

유성룡선생의 모형








충효당에서 유성룡 선생의 기운을 느끼고 우리는 걸음을 재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