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기도

감탄 또 감탄하게 되는 수원화성(2) - 수원화성의 과학성과 아름다움

커피믹스 2012. 11. 1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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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열차는 팔달산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산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조금만 올라가니 서장대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누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를 말하며 서장대와

 동장대 두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으며 '화성장대' 란 편액은 정조가 친히 쓴 것이다.


1794년 (정조18) 8월 11일부터 터 닦기 공사를 시작하여 9월29일 완성하였다.


정조는 1795년 윤2월 12일 현릉원(용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성을 수비하고 공격하는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하였다.








노대란 누각없이 전돌을 쌓아 높은 대를 만든 시설물로 적의 공격을 항상 감시해서 대와 성 전체에

오방색 기로 신호를 하며 성을 공격해 오는 적에게 쇠뇌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진지이다.

쇠뇌는 사람의 힘으로 쏘는 화살보다 더 멀리 가며 많은 양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




서장대는 높아서 풍경이 아주 멋졌다.

저기 아래 보이는 것은 화성행궁이다.



화서문을 향하여 내려간다.

지금부터 펼쳐질 풍경은 기대해도 좋다.




성벽넘어 도심과 갈대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풍광이 시작이다.






성곽과 갈대와 빌딩이 어우러진 풍경은 자연과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색다른 풍경이다.



성벽 틈으로 훔쳐본 풍경속에 사람들이 잔디위에 모여있다.




이곳은 서북각루이다.


각루는 군사적 요새지에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 휴식을 즐길수 있도록 한 곳이다.

수원화성에는 총 4개소가 있다.


이 누각은 온돌을 설치해 바닥을 따뜻하게 했다고 한다.

우리조상의 과학성은 대단하다.



잠시 누각에서 갈대밭을 본다.



높아서 전망이 좋다.





화서문에 거의 다왔다.



성곽은 화서문 윗 층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화서문은 보물 제403호로 수원화성의 서문이다. 좌우 성벽에 연결되는 돌로 된 기부에

홍예문을 두어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문의 앞부분에는  반달형으로 된 전축 옹성이

있다. 이 옹성은 한 평이 트여있어 문을 출입할 때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아래에서 본 서북각루와 갈대. 포토존이다.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에서 아래로 길게 나인 홈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아래쪽에서 성으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뜨거운 물을 부어 적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철벽옹성이라 올라갈 생각도 못하겠다.


성곽 돌의 표면이 오돌도돌하다.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곳이다.


죽 늘어선 성곽의 라인이 살아있다.


여기도 아까와 같이 뜨거운 물을 부어 적을 접근을 막았다.

 


성곽의 돌에 둥글게 패인 흔적이 보이는데 이건 전쟁의 총상자국이다.


모서리 부분에 이음새가 이어진 특이한 돌도 보인다.



어느새 장안문에 다다랐다.



장안문은 조선시대 화성(華城)의 북문(北門)으로 건립된 중층누문(重層樓門).


하나의 홍예문(虹霓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 쪽으로 원형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고, 성벽 위에는 안팍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을 쌓았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5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문 좌우로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步)

 되는 곳에 각각 적대(敵臺)가 마련되어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였고, 규모나 구조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서울 남대문과 매우 비슷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남대문에 비해 좀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장안문에도 전쟁의 총상이 남아있다.


장안문 안으로 들어가서 성곽쪽으로 가다보면 아래쪽에 컵모양 처럼 생긴 구멍이 여러개 있는것이 보인다.

이것은 컵마크 라고 한다. 

컵마크는 간절하게 비는 형태로 이렇게 컵모양으로 홈을 팠다고 한다.








장안문은 몇 겹으로 둘러싸여서 적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포를 설치해서 적의 침략에 대비했다.



수원화성을 둘러보니 과학적이고 아름다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수원화성, 꼭 가봐야할 곳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