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버스타고 가 본 조선시대 선불교 종가 이룬 함양 벽송사

커피믹스 2012. 12. 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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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15 ,12,16 이틀에 걸쳐  경남도민일보와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주관하는 버스 타고 함양 속으로 팸투어를 다녀왔다.

버스 타고 가는 여행은 학생때 이후로는 드문 여행인데 좀 귀찮긴 하지만 걷기가 부족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게

여유를 주는 여행 같기도 하다. 


함양 지리산고속 버스터미널(055-963-3745~6)(http://www.jirisanbus.com/) 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추성마을에 내려 산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버스 간격은 30분정도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창밖 시골풍경에 빠져든다.




강?


논,밭.

강.



길, 논밭...  시골마을의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느마을에는 세그루의 나무가 한 몸이 되어있는 이색적인 풍경도 있었다.

도로도 그 나무를 배려해서 차선이 그려져 있다.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인 추성마을에 다다랐다.


경남 함양 땅에 발을 디뎌 처음으로 간 곳은 벽송사이다.





벽송사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하늘이 뻥 뚫린게 광야속에 절이 있는 느낌이다.

뒷 산이 절과 거의 수평을 이루고 소나무가 눈에 띈다.

저래봬도 꽤 깊은 산 속이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에서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부용영관,경성일선,청허휴정(서산),부휴선수,송운유정(사명),청매인오,환성지안,호암체정,회암정혜,경암응윤,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 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션교를 겸수한 대 종장들을 108분이나 배출하여 백팔조사 행화도량이라는 별명이 있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민학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연꽃)이 활짝 핀것과 같은 부용만개,혹은 푸른 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의 형국에 자리하고 있다.


고인이 운거천상(구름위 하늘세계) 별유천지(인간 세상 밖에 따로 있는) 부용정토(연꽃이 활짝 핀 극락정토에) 조인만대(조사의 깨달음 만대에 이어지리) 라는 말로 표현하였듯이 벽송사는 만고에 수려한 풍광속에 위치한다.


벽송선사는 태고보우,벽계정심 선사로부터 내려오는 심인을 전해받아 조계정문의 정통조사가 되었다.

벽송선사의 뒤를 이어 벽송산문의 제2대 조사에 오른분이 부용영관선사이다.

부용선사는 도가 높고 학문이 깊어 배우러 오는 승속제자가 문전성시를 이루어쓴ㄴ데 특히 영호남 일대에 부용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가 수없이 많았다.

부용영관 문하에 수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 서산대사라 불리는 청허휴정과 부휴선수이다.


서산대사는 깨달음을 얻은 뒤 벽송산문의 제 3대 조사가 되어 지리산 일대에서 행화하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승군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서산대사 문하의 사명대사와 청매조사도 이곳 벽송사에서 오도하여 크게 불법을 떨치게 된다.그리고 부용연관의 다른 한사람의 수법제자인 부휴선수선사 또한 벽송사에서 도를 깨닫고 벽송산문의 조사가 되어 오랬동안 지리산에서 행화하였다.

오늘날 한국불교 출가스님의 모두가 서산문파와 부휴문파에 속한다.


1704년 (숙종30년)에 환성지안 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때에 불당,법당,선당,강당,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하였고 상주하는 스님은 300여명에 이르었고 부속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금대암에 선원이 개설되어 수선납자가 운집하고 벽송사 본당에는 강원이 개설되어 근세 일제 강점기까지 지속되었으니 근 300년동안 조선불교 제일의 총림이 이루어졌다.


벽송사 강원의 마지막 강주를 역임한 초월동조대사는 일제 강점기에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옥고를 치르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일제의 조선불교 말살정책으로 400여년간 지속되어 온 한국불교 최고의 조정인 벽송사의 사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벽송사는 지리산 빨치산들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어 국군에 의해 방화되어 완전소실되는 슬픈 역사가 있다.

60년대 이후 구한원응대사의 원역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에는 신라양식을 계승한 3층석탑(보물 제474호) 와 경남 유형문화재인 벽송선사진영,경암집 책판,묘법연화경 책판과 경남 민속자료 제 2호인 목장승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결계 지역이라고 출입을 금해서 절 전체모습만 보았다.


절을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 재밌다.





절 뒤편에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이다.

선방뒤 탑전앞에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서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의 전설 또한 유명하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내려온다.





이 탑의 위치는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 놓은 것인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됐다. 2중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부를 이룬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탑이지만 사찰이 세워진때가 조선시대(1520년)이므로 그때 탑도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탑의 위치가 법당 앞이 아닌 뒤편이라는 점이 특이하며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의 모습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예호서 주목 되는 탑이다.현재 탑의 상륜부에는 복발과 노반이 남아 있으며 탑의 높이는 3.5m이다.


석가탑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단정하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도인송과 미인송이 있는 절 뒤편언덕(원래 벽송사자리)에서는 벽송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앞과 옆으로 늘어진 산새까지 더해진 풍경은 처음 보는 듯 하다.





출처 : 함양군 홈페이지 (http://tour.hygn.go.kr)


 목장승은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예로부터 목장승에 기원하면 애정이 돈독해진다고 한다.



벽송사 삼층석탑 가는 길에도  장승이 눈에 띄었다.



알고보니 벽송사의 역사가 장난 아니구나 싶다.


벽송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