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대만- 타이페이

대만여행기 15 - 타이페이 가면 꼭 봐야하는 타이완 민주기념관

커피믹스 2013. 2. 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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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총통부를 둘러보고 걸어서 타이완 민주기념관(중정기념당)으로 향하였다.

대만의 거리와 가로수를 보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중정기념당이었다.

 

 

 

중정기념당 입구의 자유광장문은 아주 컷다.

대륙의 기질을 엿 볼 수 있었다.

 

 

자유광장문이 얼마나 큰 지 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저기 안쪽에 보이는 것이 장제스(장개석)를 기리는 중정기념당 이다.

 

타이완 민주기념관의 크기는 총면적 약 25만 평방킬로미터이다.

중국 전통 양식을 융합한  건축물들은 타이완 유일의 중국 제왕 왕릉 규모로 제작 설계되었다.

 역사적 가치가 높아 관광객이 필수로 방문하는 인기 관광지이다.

 

 

자유광장문을 들어서니 아주 너른 광장이 펼쳐졌다.

주말이라 무슨 발표를 준비하는지 학생들이 춤을 준비하고 있었다.

 

 

광장에 부는 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시원했다.

광장이 주는 느낌은 아주 자유롭고 시원하다.

광장에서는 뛰어도 고함을 질러도 자유로운 공간이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국립극장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기악 합주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왼족에  보이는 것이 국가희극원이고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국가음악청이다.

 

 

 

광장 끝에 와서야 중정기념관으로 올라가 본다.

이 건물도 상당히 크다.

대만도 큰 걸 좋아하나 보다.

 

 

중정기념관이 제법 높아서 아래 광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데 풍경이 꽤 괜찮다.

 

 

장제스 동상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장제스(장개석)은 중국의 군인, 정치·군사 지도자로 중화민국의 총통이다. 흔히 불리는 장제스의 "제스"(介石)는 바로 그의 자이며 "중정"(中正)은 그의 본명이다. 황푸군관학교 교장, 국민혁명군사령관, 중화민국 국민정부 주석, 중화민국 행정원장, 국민정부군사위원회위원장, 중국 국민당 총재, 삼민주의 청년단 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장 성 펑화현 출신으로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유학갔다. 일본 유학시기에 중국동맹회에 가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다. 쑨원의 신임을 받아 1923년 제1차 국공합작때는 소련으로 군사시찰을 갔으며, 귀국 후 황푸군관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북벌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4월에는 상하이 쿠테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축출하고 1928년에 베이징을 점령하여 북벌 완수를 선언했다.
 
이후 난징에 수도를 정하고 국민정부를 선포, 국민정부 주석과 육군, 해군, 공군 총사령이 되어 정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1930년부터 공산당 토벌에 나섰으며, 이를 항일전쟁보다 우선시하였다. 그러나 1936년 공산당 토벌작전을 독려하기위해 시안에 갔다가 그의 부하인 장쉐량과 그의 군대에 의해 감금당한 시안 사건을 계기로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을 결성하여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쟁(중일전쟁)에 나섰다. 1945년 중일전쟁 끝난 이후 1946년부터 다시 공산당과 내전을 벌였으며, 1949년 공산군에 밀려 중국대륙의 본토를 포기하고 타이완으로 이전하였다. 중화민국의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 타이완을 지배, 장기독재하다가 1975년 사망했다.
 
1948년 5월 20일부터 1949년 1월 21일까지는 중화민국의 초대 총통과 중국 대륙의 국가원수를 지냈고 1950년 3월 1일부터 1975년 4월 5일까지 초대~5대(리쭝런의 직무대행기간 및 사망으로 인한 옌자간의 직무승계기간 제외) 중화민국 총통을 역임했다. 193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중화민국 내에서는 쑨원 다음으로 '제2의 국부'(國父)로 불린다

 

by 위키백과

 

 

사람들이 서 있는 저 곳이 풍경이 좋아 모두들 사진을 찍는 자리다.

우리 가족도 한 컷 찍었다.

 

 

중정기념관 입구에 서 있는 군인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군인은 실제 사람인데 눈동자하나 깜빡이지 않고 침도 삼키지 않는다.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한 모습이었다.

 

 

시원한 광장을 벗어나는데 아까 그 아이들이 공연 리허설에 들어갔다.

 

 

 

 

줄을 맞춰

 

 

각자의 악기에 충실한다.

 

 

 

안무도 뒤 섞인 리허설을 펼친다.

우리나라에는 요즘 보기 드문 고적대의 모습의 변형같다.

 

 

국립극장 담벼락 옆에서 아이들이 춤을 연습하기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모습은 어딜가도 비슷한 모양새다.

 

 

 

중정기념관을 나와 중정기념관 지하철을 한참 찾았다.

짧은 영어로 눈에 띄는 경찰에게 지하철을 물어봤는데 조금 어이없어 하는 몸짓이었다.

 

알고보니 경찰관 바로옆이 지하철 입구였다.

파란 기와에 흰 기둥 5번이라고 적힌 여기가 바로 지하철 입구였다.

 

너무 멋져서 지하철 입구로 안보이는 곳이었다. ㅋㅋ.

 

우리 일행은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지하철을 타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