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전라북도

창작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최명희 문학관

커피믹스 2013. 9. 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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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을 돌다보면 최명희 문학관을 만난다.

 

 

 

최명희씨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주한옥마을에 와서야 최명희씨가 전주출신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게되었다.

 

 

최명희 작가에 대해 조금 알고 가자.

 

"전주는 작가의 고향이자 문학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전주 풍남동(당시 화원동)에서 태어난 작가는 풍남초등학교

(1960년 졸)와 전주사범학교 병설여자중학교 (1963년 졸), 기전여자고등학교(1966년 졸)를 거친 뒤,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 1968년 영생대학(현 전주대학교) 야간부 가정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수료했다.
이 기간 중 작가는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서무직에 종사하기도 했다. 1970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

 1972년 졸업과 동시에 기전여고에 교사로 부임하여 서울 보성여고로 옮기기까지 2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혼불』 출간
이후,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12월 11일 몹시도 차고 매운 날, 지병인 난소암으로 영면(永眠), <전주시민의 장>으로 장례 후 모교인 전북대학교 부지 건지산 중턱에 안장됐다. "

 

 

 

 

최명희길과  생가터 가는길은 전주한옥마을내의 동학혁명기념관 → 경기전 뒷담 → 이어지는 좁은 길 →

 한 중간에 생가터 비 → ‘ㄴ’자형 골목이 최명희 길 → 길 끝 최명희문학관 후문 으로 이어진다.

 

 

 

 

최명희 작가의 대표작 혼불은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代)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발표 1996년 12월 전10권 완간
수상 단재상,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직후부터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2000만 원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1부가 당선되었고,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한 뒤 1996년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간된 최명희의 작품이다.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김열규는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 최명희는 이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고,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나가 1만2천장을 썻다니 그 정성이 소설에 나타나는게 아닐까?.

 

 

 

 

소설 혼불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재밌기도 한 표현이다.

 

작가가 쓴 만년필과 자,가위.원고끈

 

 

 

바깥에 쌓여진 방명록만 봐도 얼마나 많은이가 다녀갔는지 알겠다.

 

최명희 문학관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꼈다.

 

최명희 문학관  http://www.jjh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