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전라남도

목포여행/목포 평화의 소녀상과 목포근대역사관 1관

커피믹스 2017.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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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에 가면 목포근대역사관은 꼭 들르게 되죠.

알쓸신잡2 목포편에도 나왔었고 목포의 근대역사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곳이죠.



유달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목포근대역사관 1관입니다.

목포근대역사관 아래에는 목포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녀상 뒤로 목포근대역사관이 보이는 뷰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침략의 역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건물과 소녀상, 한국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입니다. 건물이 고풍스럽습니다. 1900년 목포 일본영사관 건물로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띄고 있어서입니다.

1897년 10월 1일 목포항이 개항되고 1897년 10월 26일에는 목포 일본영사관이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한,일간의 국제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목포이사청,목포부청,목포시청,목포시립도서관,목포문화원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은 좌우대칭 사각형 모양의 건물로 중앙에 있는 현관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습니다.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의 허리 돌림띠를 두었으며 창문 왼쪽과 오른쪽에 흰색 벽돌을 반듯하게 장식하였습니다. 실내의 천장장식,벽난로,거울 등은 건축 당시의 모습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건물은 목포의 개항과 관련하여 역사적 전축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근대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1981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목포근대역사관은 관람료가 있습니다.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입니다.

매표 마감시간은 17:00입니다.



1900년대 목포시내 모형입니다.

적산가옥들로 이루어진 목포시내의 모습입니다.



1층 한켠에는 3.1 운동 그림과 한복이 준비되어 있어 만세운동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한복입는 것이 유행인 데 3.1운동 때 입던 한복을 입고 체험해 봄으로써 역사를 기억하게 되겠죠.



군데 군데 벽난로가 있는데 1900년대 모습그대로입니다.



목포시내의 근대역사건물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1929년 건물).



중앙동 적산가옥 모형.

목포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적산가옥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적산가옥을 개조한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카페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포에 관하여


목포는 나무가 많은 포구라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 혹은 목화가 많이 난다 하여 목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영산강과 서남해가 만나는 지리적 조건으로 바다로 나아가는 길목이자 외적의 침략을 막는 길목이 되어 목포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습니다.



남촌의 일본인


일본인 거리가 형성된 구 각국 공동 거류지는 유달산 남쪽 지역에 건설되어 남촌이라 불리었습니다. 일본인 거리는 번듯하게 구획되고 포장되었으며 가로등이 설치된 근대적 도시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각종 금융기관, 병원, 학교 등 시설물이 들어섰으며 개항이후 목포의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상점들이 들어서 상가를 형성하였습니다. 



2층에는 인력거 모형이 있습니다.

보존상 탈 수는 없고 앞에서 사진촬영은 가능합니다.



바깥에는 방공호가 있어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굴 속으로 들어가면 우우우웅 하는 경보가 울립니다.

민방위 훈련시 듣는 소리가 들리는데 방공호 체험을 극대화 시켜줍니다.



일본은 유달산 방공호, 오키나와 해군 방공호. 고하도의 의뢰정 은닉을 위한 인공터널 20여개를 만들었습니다.

유달산 밑의 방공호는 일제 말기인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달산 방공호의 길이는 총 연장 85미터이며 밖으로 통하는 문은 3개가 있습니다.이 방공호는 당시 유달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사단의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목포근대역사관 마당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심어져 있고 목포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뷰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굴욕의 역사 일제시대를 지나왔다는 걸. 아직 일본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