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이웃 블로거님의 글에 심심찮게 올라오던 진해 김달진 문학관을 지난 주말쯤에 찾아가 보았다.




김달진 문학관이면 그저 그 인물에 대한 기록이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너무 아름다운 소사마을에 있다는 게 좋았고 월하 김달진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선 담벼락에 활짝핀 빨간 장미가 시선을 끌었다.

요즘 풀꽃 하나라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내가 장미를 그냥 지나칠수가 없어서 카메라에 담았다.





월하 김달진 선생은 어떤 분일까?

입구 사진을 보니 아주 마음 좋은 사람이었을거 같다.



월하 김달진 선생은 1907년 진해구 소사동에서 태어나서 1920년에 항일 민족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학교를 다녔으나 몸이 아파 고향에서 요양을 한다. 1923년 다시 서울 경신중학교를 다녔지만 4학년때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운동으로 퇴학당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26년부터 계광보통학교가 민족항일교육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조선총독부로 부터 1933년 폐교될때까지 모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계광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김달진은 1929년 순수문예지 문예공론 지에 양주동의 추천으로 시 잡영수곡 이 실리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그리고 민족 현실의 절망과 좌절의 끝자락에서 불 자를 발견하고 승려가 된다.1936년 동국대에 입학하고 서정주,김어수 등을 만나게 되고 그 해 5월 시원의 동인으로 김동리와 교분을 갖게 된다.11월 서정주,함형수와 더불어 동인지 시인부락 지를 내며 시인으로서 뚜렷한 문단 활동을 하게 된다.

김달진 시인이 가장 활발하게 시를 발표한 때는 1935년이고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샘물 이 1938년 2월 23일 동아일보에 게재된다.




김달진 문학관엔느 여러시인의 시가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읽어보면 시적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김달진 선생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는데 낡은 토시나 펜, 부채등을 보니 평소 김달진 선생이 시를

 쓸때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다.

요즘 시인 같으면 고뇌에 찬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겠지.

블로거도 글을 쓰는 직업인지라 나름 단어 하나하나 고민에 쌓인다.

글이 안써지는 날은 정말 머리가 굳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김달진 문학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초가집이 있는데 김달진 생가이다.



열려 있는 싸립문 사이로 관광객들이 하나둘 찾아온다.

할머니와 엄마를 따라 온 아기는 초가집이 참 신기할 것이다.

뛰어도 야단 맞을 일도 없고 대청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아도 좋다.


 



김달진 생가는 생각보다 넓었다.




사랑방,안방 고가구로 꾸며 놓아서 옛 모습을 훔쳐볼수 있다.

다듬이 돌 하며 곰방대는 할머니 살아계실때 많이 보던 물건이다.



마당 한켠에는 장독이 나란히 모여있다.

요즘은 장담그는 사람이 많이 없지만 예전에는 마당이 있어 장을 담궈 먹었다.

느리게 사는 삶이 한번씩 그립지만 지금의 편리한 생활을 거부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것 같다.



파르파릇한 열무가 텃밭에 많이 심어져 있다.

수확의 기쁨은 얼마나 클까만은 그 숨은 노력은 도시인들은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작은 텃밭하나 갖고 싶은 게 도시인들의 마음이 것 같다.



김달진 문학관을 나서는데 비파나무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비파나무 열매 열린 집은 부자였다 라는 어느 관광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월하 김달진 시인의

 넉넉한 마음을 생각해본다.





 

 *2017년  봄 , 김달진 문학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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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41-2 | 김달진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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