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내가 잘 몰랐던 경남 사천 탐방

커피믹스 2015. 10. 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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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 사천시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천 항공우주박물관이다.

애들 초등학교때 견학가면 빼먹지 않고 가는곳이었다.

그 이외의 사천은 전에 살던 동네 동생이 사천에서 이사왔다고 했다.

진주 근처 사천,내가 아는 것은 그게 다였다.

이번 해딴에가 진행하는 이야기탐방대로 인해 사천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다.

고려 현종과 아버지 왕욱의 이야기 http://decemberrose71.tistory.com/636 도 있었고 또한 사천 축동읍 가산리에는

석장승이 있었고 곤양면 흥사리엔 보물인 매향비가 있었고 사천갯벌이 있었다.

특히나 사천에 갯벌이 있다는 건 전혀 몰랐고 거기다 무료라는 놀라운 사실!!. 



역사 1)가산리 석장승 - 조선시대 조창


 경남 사천 축동읍 가산리 석장승이다.

시골길가에 있는 석장승인데 목장승보다 왠지 으스스한게 공포영화에 어울릴거 같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다.

밤에 만났다면 깜짝놀라 넘어질거 같다.


 장승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의 표지로 이용되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조선시대에는 장승이 지방에 따라 벅수,벅시,법수,수살목,당산할배 등으로도 불렸다.


이곳 가산에는 가산창이라는 조선시대 조창이 있어 이웃한 7개 군현의 세곡을 모아 바닷길을 이용해 서울로 올려 보냈다.그렇기 때문에 이 곳 현감은 세곡을 실은 배의 무사운행을 늘 걱정하엿다.그래서 뱃길 보호와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며 이곳에 돌장승을 만들어 세웠다고 한다,



1980년 12월 5일에 새로 세운 석장승이다. 도깨비를 닮은 모습.




이곳에는 남장승 두쌍과 총각장승 두쌍등 모두 네쌍의 돌장승이 서있다.남장승과 총각장승은 각 한쌍씩 짝이 되어 마을 입구와 그 곳으로부터 650m 떨어진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주보고 서 있다.






 


남장승은 사모를 쓰고 관복을 입은 문인석의 모습이며 총각장승은 머리에 상투를 틀고 관복을 입고 있다.마을 입구에 서 있는 현재의 총각장승은 원래의 것이 분실되어 1980년 12월 5일에 다시 세운것이다. 이들 장승은 조창이 폐쇄된 이후 조창을 보호한다는 원래의 역할 대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그리하여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장승제가 거행 되었다,그리고 장승제가 끝나고 나면 가산오광대가 공연되었다고한다, 요즘에도 정월 대보름에 장승제를 지낸다.


얼굴형을 보니 갸름한게 옛사람들이 얼굴이 그랬나는 생각이 든다.




두개의 뿔 같은거는 댕기를 꼬아올린거라는 데 , 어찌보면 뿔 같다 ^^.



노란 벼 저쪽으로 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역사 2) 흥사리 매향비 - 고려후기 무신 이순장군과 달공스님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는 매향비가 있다.


역사속에 잘 안알려졌지만 고려우왕때 이성계와 쌍벽을 이루던 이순장군이 있었다. 

이순장군은 주로 북쪽오랑캐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권력다툼이 드세어지는 과정에서 이순장군은 모든걸버리고 사천으로 내려오게 된다.

뒤쪽산쪽이 선들재 ( 신선으로 들어가는 재), 여기마을이 단속마을 이라 불린다.

이순장군이 속세와 단절하고 사천으로 내려온 것이다.


여기 근처에 문다람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달공스님이라고 계셨다.

이순장군이 덕망을 쌓고 4100명의 사람을 모았고 달공 스님이 사천 매향비를 썼다.


향나무를 사서 갯고랑에 묻어 아주아주 56억년뒤에 미륵이 되어 나타나 이세상을 편하게 해달라는 염원,

왜구가 오지마라, 극락왕생이라는 염원을 담아 매향을 했다.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지역은 바다이고 갯벌이었다 멸치를 잡던 바다였는데 1970년대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굴되었다. 





복을 빌기 위해 바다에 향목을 묻고 그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나무를 강이나 바닷가에 묻으면서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매향 또는 침향이라 한다.이 비석은 1387년에 세워진 것으로 자연석 위에 15줄 204자를 새기고 있다.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읽을수 없는 부분도 있다.정치가 혼란하던 고려시대 말에 승려를 중심으로 4100명이 계를 조직하여 임금의 만수무강과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기 위해 매향의식을 행했다는 내용이다.승려 달공이 문장을 짓고 수안이 글씨를 썻으며 김용이 새겼다.매향의식과 관련된 비석으로 1335년 세워진 침향석각이 평안북도 정주에 남아있으나 내용이 전혀 없다. 따라서 매향비의 건립목적과 건립연대가 확실한 이 비석의 가치는 아주 높다.






거대한 돌덩어리를 쳐다보고 있자니 이 돌덩이가 다시 육지에 나타나게 된 게 결국은

 4100명의 염원을 모은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다하면 뭐든지 이루어지는것이라 믿는다 .



사천만 갯벌은 길하나 사이로 누런 논과 갯벌로 나뉘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생태 ) 사천만갯벌



사천만갯벌 생태지도를 보면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천은 아직 생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는 말이다.

부산 가까이 이런 갯벌이 있다는 것은 잘 몰랐고 아직까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것 같다.

게다가 무료라니 여벌옷만 가지고 가면 쏙이나 게 등을 채취하면서 하루를 재밌게 보낼수 있다.



갯벌 가운데로 길이 나있어서 체험 안하는 사람도 갯벌 가운데로 갈 수있다.




여기 낙조도 아주 유명하다니 다음에는 낙조사진 찍으러 오고 싶은 곳이다.





가산리 석장승 : 경남 사천시 축동읍 가산리 626-1

사천 매향비 :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부잔교갯벌탐방로 : 경남 사천시 용현면 금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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