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이 든 소라먹다가 쓰러질 뻔 했어요

커피믹스 2009. 11. 24.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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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남편이 포항에 다녀왔습니다. 남편이 쭈삣쭈삣 오렌지 색 봉투를 건넵니다. 남편이 쭈삣거리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여행 갈일이 많아져서 제가 심술이 좀 났습니다. 맨날 혼자만 좋은데 다 가고 , 매일 투덜거렸거든요.
그날도 내가 반갑게 맞아주질 않았거든요. 남편은 평소에 과일이나 간식거리를 잘 사오질 않는데 여행갔다와서 미안해서 사왔나 봅니다.

내가 뾰로퉁한 목소리로

" 이게 뭐야 "  했더니

남편은

" 소라야, 포항 시장에서 샀는데 아주 싱싱해"

" 이만원어친데 엄청 많이 주더라 "

" 한 번 삶아봐봐"   하며 목소리에 힘을 실어봅니다.

" 그래, 소라가 참 싱싱하긴 하네 "

" 양도 많기도 많다"  

" 새끼 소라네 "  하며 내가 마지못해 소라를 손질했습니다.

조개라고는 대합하고 전복 , 꼬막만 조리해봐서 소라도 꼬막씻듯이  껍질끼리 비벼 씻었습니다.
소라는 길쭉하고  울퉁불퉁해 잘 씻기질 않았습니다. 껍질의 미끈거림만 제거하고 껍질에 붙은 녹색물질은 제거안하고 푹 삶았습니다.
껍질먹을건 아니니까 푹 삶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요. 한 40분정도 푹 삶아서 한개를 꺼내 먹어보았습니다. 신선한 소라가 쫄깃하게 잘 
삼겨졌습니다. 

" 됐어, 맛있게 삶겨졌네."

이쑤시개를 준비하고 초장을 담아내고 김이 펄펄 나는 소라를 소쿠리에 받혀 탁자에 내놨습니다.
아이들은 소라냄새가 싫다며 먹지 않았습니다. 나도 아이들에게 별로 권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배탈날까봐 약간 걱정 되더라구요.
남편과 저는 신선한 소라맛에 반해 맛있게 열심히 먹었습니다.

남편이 감탄을 하며

" 바다에서 금방 캤는지 참 싱싱하네 "

" 참 쫄깃하니 맛있네"

나도 화가 좀 풀려서

" 참 싱싱해서 맛있다 그죠 "  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새끼소라라도 육질이 단단해 많이 안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저녁도 먹은뒤라 그리 많이 먹지는 못했습니다. 
소라를 다먹고 껍질을 치우고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했습니다. 한 10분쯤 tv를 봤을까요?
머리가 핑 도는게 이상했습니다. 약간 어지럼증이 느껴졌습니다.
남편도 똑같이 느끼는지 

" 어지럽지 않나?" 합니다.

" 나도 어지러워요. "

"소라 삶는 방법이 틀렸나?"

남편이 " 그럼 소라에 독이 있나보다"   했습니다.
 
내가 " 소라에 독이 있다고?"

" 삶아 파는 소라는 괜찮던데?"

남편은  " 아마 삶는 방법도 있을거야 " 하며 소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럼 남은 소라는 어쩌지? 소라가 참 싱싱했는데 ...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기로 했습니다.

그날밤 우리부부는 어지럼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소라가 냉동실에 들어간 지 한 보름쯤 됐을까. 친정엄마가 놀러오셨습니다. 엄마랑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냉동실의
소라가 생각났습니다. 엄마는 베테랑주부니까 아시겠지. 

" 엄마, 소라 어떻게 삶아요?"

"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

" 술을 부어 삶으면 되겠지 "


엄마의 말에 힘입어 다시 소라요리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버리기엔 소라가 너무 싱싱했으니까요.
우선 소라 껍질을 솔로 잘 비벼 씻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술을 부어 푹 삶았습니다. 마침 남편이 있던 토요일이라 잘 삶아
초장에 버무려 다 같이 먹을 생각이었죠. 
남편이 우리 얘기를 듣고 그때 소라독 기억이 아찔했는지 한마디 거듭니다.

 " 소라독 있다던데 ... 그거 뭐하러 삶니?"

"  그럼 이 아까운 걸 다 버려요? "

그러자 잠깐만 기다려봐 하며 남편이 인터넷을 뒤져봅니다.


" 음... 소라 중간쯤에 관 같은 모양에 독이 있다네." 

" 그걸 제거하고 먹어야 된대"

" 그래요??"

댓글을 보니 실제 이부분은 독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때부터 나는 소라관을 찾아 노가다를 했습니다. 삶은 소라를 하나하나 깐다. 소라 하나의 중간쯤을 찢어 관모양을  찾아낸다.
이거 완전 대수술이구만.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바나나 축소한 모양 같은 갈색 혹은 아이보리색 관을 찾아냈습니다.
이거다 하는 확신에 소라하나하나 관을 다 끄집어내어 관없는 소라를 따로 분리했습니다. 이거 정말 일거리구만.


내가 " 괜히 시작했다 " 하자
 
엄마가  " 음식을 버리면 안되지 " 하며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분리전 소라 모습

분리후 소라 모습

그래 이왕 시작한거 끝까지 해보자. 분리된 소라가 조금씩 조금씩 쌓였습니다. 어느새 소라가 다 분리되었군요.
손을 깨끗이 씻고 초장을 만들었습니다. 분리된 소라에  듬뿍 넣고 맛있게 버무렸습니다. 초장에 버무리니 맛있는 안주가 되었군요.
버릴뻔하던 소라를 이렇게 맛있는 요리로 완성하니 희열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젓가락 맛있게 먹어 봤습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씁쓰름한 맛이 없어지고 쫄깃하고 매콤 달콤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골뱅이 무침과 비슷한 맛이랄까요.
씁쓰름한 맛은 독이 든 관의 맛이었나 봅니다.  제대로 요리를 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한 젓가락 권하자 두려워합니다. 씁스름한 맛이 없고 맛있다고 하자 그제서야 남편은 한개를 먹어봅니다.

" 어, 맛있네 "

" 정말 씁쓰름한 맛이 없네 "

남편도 내 노력을 인정하는지

" 냉장고에 있는 술 좀 줘" 하며 소라요리를 인정합니다.

" 여기 있어요"

이렇게 성공한 소라요리로 뿌듯한 술안주를 내놨습니다.
맵다 매워 하며 소라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고 15분 20분이 지나도 어지럼증은 없었습니다.
밤에 잠도 잘 잤습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소라가 두렵지 않아요.

* 댓글에서 많은 분들이 제가 독이라고 생각한 부분이 독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네요.
  제가 잘못 안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걸 먹고도 아무 이상이 없었던 것은 분리하는과정에서 독도 같이 제거된것 같습니다.
  불안해서 왠만한건 다 떼어버렸거든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