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생일이 작은 설날인 여자의 비애

커피믹스 2010. 2. 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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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2월 13일 부터 15일까지는 설연휴입니다. 설이 되면 여자들은 음식준비로 명절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저는 명절스트레스에다가  제 생일까지 겹쳐 우울한 설명절을 보냅니다. 제 생일은  음력 12월 30일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설날이라고
부르는 날이지요. 이 날은 설 음식하느라고 제일 바쁜 날입니다. 그런 바쁜날 태어난 제가 생일 밥 제대로 얻어먹을수 있었을까요?

 저희 친정이 큰집이고 아버지가 외동아들이라 엄마는 작은 설날에는 제일 바빴습니다. 아니 설날 일주일 전부터 바빴다는게 맞는말일겁니다.
시장에 가서 제사에 쓸 생선과 야채, 건어물 등을 사고 조리에 들어가기전에 야채는 손질을 해놓아야합니다. 그런과정이 있은후에 작은설날에
는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을 부치고 나물을 삶고 무치고 생선을 찌고 수육을 삶고 등등등 제사음식을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저녁먹고나서 조금 숨을 돌립니다. 
그런 엄마에게 " 엄마 오늘 내생일이야 " 하면
 엄마는 " 맞네, 깜빡했다" 며 다음에 챙겨준다 하십니다.
 다음 해의 설날이 또 다가오면 엄마는 또 제사음식에 바빠서 생일을 잊어버리고 내생일은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신경이 좀 쓰이는지 농담반 진담반으로 
 " 오늘 우리 셋째딸 생일이네 ."  
"  네 생일이 최고다." 
" 맛있는 음식도 많이 있고 " 하십니다.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저를 위한 음식인가요? 다 조상님들 드시고 남은 거 제가 먹는거죠.
그렇게 생일하면 즐거워야할텐데 왠지 우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20대에는 잠시 즐거운 때도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들끼리 생일을 챙겨 주는거죠. 그때 잠시나마 행복한 느낌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친구들이 취직을 하기 시작하고 사회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넓히며 바빠졌습니다. 생일을 챙기는게 줄어들더니 명절끼인 생일은
더욱더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취직한 아이들은 집에 내려오기 바쁘고 부산에 있는 아이들도 작은 설날만큼은 만나서 놀기보다
집에서 엄마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내 생일은 커다란 설날이라는 행사 뒤에 쏙 숨어버렸습니다.
나도 내생일을 챙겨달라고 하기에는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 생일날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첫 생일상은 시어머님께서 차려주셨습니다.
날짜가 작은 설날하고 겹치니 며칠을 앞당겨서 생일잔치를 했습니다. 잊혀진 나의 생일을 챙겨주시니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선물도 받고 정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아! 매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다음해 작은설날이 되었습니다.  아침에는 나를 위해 찹쌀밥과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 아침을 먹고 서둘러 큰집으로 
향합니다. 저희 시댁은 작은집인데 항상 큰집에 가서 설음식을 같이 준비합니다. 아마 시아버지 형제가 두분 밖에 없어서 
음식도 같이 하곤 하나봅니다. 처음에 시댁이 작은집이라는 사실에 안도하였습니다. 보통 작은집은 제사를 안 지내니까
명절에 별로 할일이 없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결혼해보니 집안마다 차이가 있더라는 거지요.  

큰집에서 저녁때쯤 음식을 다하고 조금 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오늘 큰애 생일이지? "
" 내가 선물 하나 샀다 . "
하시면서 뭔가를 내미십니다
뭔가 열어보니 속옷이었습니다.  결혼하니까 이제 내 생일을 더 챙겨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큰어머니께서 
" 오늘 질부 생일이야? "
" 아이고 축하한다. 근데 내 생일도 오늘이야. 하하하. "

" 그러세요. 오늘 생일인 사람 드문데. 신기하네요."
" 큰어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큰어머님께서 작은설날에 태어난 사람은 먹을복이 많다고 하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큰어머님도 태어나서 이때까지 제대로 생일을 못챙겨 드셨을걸 생각하니 동병상련이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집안에 생일이 명절인 사람이 한사람 더 있습니다. 바로 시아버지이십니다.
시아버지 생신이 1월 1일 입니다. 그래서 항상 일주일 정도 당겨서 생일을 치룹니다. 

그날 저녁에 사촌아주버님이 와서 케잌을 사온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맥주를 사오겠다고 합니다.
어머님도 " 같이 생일파티 하면 되겠다." 며 맞장구를 칩니다. 거기다 반발하기가 그렇습니다.
생일이 겹치고 시간이 없으니 한꺼번에 생일축하해 주겠다는데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큰어머님 생신에 내가 그냥 꼽사리 끼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이해 되시죠? 

이제 제 생일에 대해 완전 무뎌졌습니다. 얼마 전에는 미역국과 찹쌀밥도 까먹고 내생일을 누가 이야기해줘서야 알았습니다.
시부모,친정부모,남편,아이들 생일은 챙겨도 내 생일은 까먹는 완전 아줌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곧 설날이 다가 오네요. 거기 내 생일은 없고 설날만 있어요. 그래서 이제부터 미리 챙기기로 했습니다.
양력 하루를 잡아서 내생일로 정하고 축하좀 받아야겠어요. 
나도 한 인간이고 내 생일을 챙기고 축하 받을 권리가 있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