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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사리가 있는 통도사

커피믹스 2011. 10. 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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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대표블로그  경남e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gnfeel/140137988750

 경남 양산 통도사는 역사가 깊은 큰 절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중인 646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해인사,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로 꼽히는 큰 절입니다.
통도사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여 불보 사찰이라 불립니다.


 창건 당시에 대웅전,적멸궁,법당 등의 건물이 있었고,금강계단에 진자 부처인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으므로
대웅전에는 부처의 모형인 불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절 이름은 영취산의 기운이 서역국 오인도의 땅과 통한다고 하여 통도사라 불렀다고 합니다.
자장은 이 절에서 금강계단을 쌓고 보름마다 불법을 설하여 계율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1603년 선조 36년에 송운대사가 재건하고 다시 1641년 인조 19년 우운이 중건하였습니다.


통도사 입구에서 보면 탑과 비가 세워져 있는게 보입니다.

탑과 비는 여러가지 모양이었습니다.

* 부도원은 역대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세워놓은 곳으로 부도밭이라고도 부르는데,주로 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치한다. 통도사 부도원에 모셔진 부도와 부도탑비는 원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93년 월하 방장스님의 교시로 이전하여 현재의 위치에 새롭게 봉안한 것이다.


부도원은 상단에는 부도,하단에는 부도탑비와 통도사와 관련된 공적이 있는 분들을 기리는 각종 공덕비가 있다.상단 부도 가운데는 임진왜란 이후 통도사를 현재 모습으로 완성한 우운당 부도와 조선후기의 선지식 설송당 부도 등을 비롯하여 근대의 구하,경봉스님 등 17세기부터 현재까지 통도사를 대표하는 역대스님의 부도 60여기와 각종 비석 50여기가 안치되어 있다.부도의 형식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형태인 중형을 비롯하여 구형,전각형등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통도사만의 독특한 부도가 많다. *
 

통도사로 들어가 봅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극락전




오른편에 극락전·약사전(藥師殿)·성화각(星華閣)·용화전(龍華殿)·관음전·장경각 등이 있고, 왼편에 범종각·만세루(晩歲樓)·원통방(圓通房)·감로당(甘露堂)·명부전(冥府殿)·응진전(應眞殿) 등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낡은 절의 모습과 많은 절을 보고 통도사가 삼보사찰의 하나라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외국인도 신기한 모습인지 아주 열심히 관광을 하고 있었습니다.

* 극락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94호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아미타여래를 봉안하는 극락전은 아미타전이라고도 하면 또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평안한 삶을 누린다 하여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아미타여래가 다스리는 곳이 서방 극락 정토이기 때문에 극락전은 언제나 중심 불전의 서쪽에 위치하여

참배하는 사람들이 그곳을 향하도록 세워져 있다.

극락정토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세계를 염원하는 사람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외우며 극락에서 누리는 새로운 삶을 기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미타 신앙은 그 어떤 신앙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여 6,7세기 무렵부터 이미 대중속에 자리 잡았다

삼국사이의 치열한 전쟁 속에서 생겨난 숩많은 희생자가 극락으로 갈 것을 바라는 기도가 자자연적으로 아미타 신앙으로 귀의 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대웅전 다음으로 많이 세워진 건물이다.

그만큼 아직도 아미타여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깊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극락전에서는 아미타불과 함깨 그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통도사 극락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면 3칸,측면 3칸으로 된 이 극락전 은 1369년 고려 공민왕 18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8세기 초에 중건되었다

이 건물은 통도사에 있는 세개의 영역 가운데 하위 영역에서 중간 위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외관의 평면 구조 역시 그에 맞추어져 잇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에 건물자체도 화려하고 대웅전에 버금갈 정도로 내부 장식도 많은데 이 극락전 역시 그렇다.

작은 건물임에도 팔작지붕에 받침기둥을 갖추고 있다.

 













* 영산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영산은 영축산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가장 오랫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하던 곳이다.바로 이 영산을 이 땅에 재현한 것이 영산전이다.그러므로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부처가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파한 영산회상에 참석하는 것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한다. 이 영산전은 신앙의 정도에 따라 나누어진 통도사의 세 영역 가운데,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하위 영역의 중심 분전으로 동서로 양옆에 약사전과 극락전을 거느리고 있다.이런 구성은 조선 후기의 불화에서 흔히 삼세불로 표현되었다.

삼세불은 중앙에 자리잡은 현세의 부처 석가모니불,왼쪽에 자리 잡은 과거의 주처 약사불,오른쪽에 자리 잡은 미래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말한다.세 건물로 이루어진 구조는 바로 이러한 삼세불의 배치와 일치한다. *
 




 * 약사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97호


이 건물은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불성을 닦도록 도와주는 약사여래를 모십 법당이다.약사여래는 동방세계를 다스리므로,약사전은 언제나 중심 불전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약사여래는 과거 세상에서 약왕이라는 이름의 보살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기 위해 12가지의 큰 소원을 세웠다고 한다.그러므로 과거를 상징하는 부처이자 대의왕불이라고도 한다.우리나라에서 약사 신앙은 삼국시대부터 유행하였는데 당시 전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속출하자 약사여래는 새로운 구원자로 등장하였다.신라의 선덕여왕이 병에 걸렸을때 필본법사가 약사경을 염불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고려 시대에도 국난이 닥쳤을 때마다 약사 도량을 열어 부처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을만큼 약사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다시 중앙의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본당인 대웅전에 이른다.


* 통도사 불이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이곳 불이문은 대웅전과 금강계단으로 향하는 마지막 문인 동시에 통도사의 세 개 영역 가운데 중간영역의 출입구에 해당하는 문이다.불이란 진리 그 자체를 다르게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란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그리하여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는 이 문을 통해야만 만날 수 있으며 이 속에서 참된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실현된다고 한다.그리고 이 문을 통해 참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 모든 번뇌를 벗게 되기 때문에 이 문을 해탈문이라고도 한다.

통도사 불이문은 1305년 (고려 충렬왕 31)에 창건된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 건물이 언제 중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건물은 정면 3칸,측면 2칸이지만 중앙 기중의 간격이 넓어 훨씬 웅장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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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관음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건물이다.관세음보살은 원만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기 때문에 관음보살을 모신 곳을 가리켜 원통전이라고도 한다.관음보살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이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무런 인연이 없는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섬기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이 때문에 민간사회에서 널리 신봉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관음신앙이 유행하였으며 지금도 보살을 모신 불전 가운데 관음전은 가장 흔하게 눈에 뜨인다.대체로 관세음보살은 연꽃이나 감로병과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이 모양은 본래 깨끗하지만 '욕심,성냄,어리석음'의 삼독에 물들어 있는 중생의 마음을 이 감로수로 씻어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관음전은 통도사의 세 개 영역 가운데 중위 영역에 있는 세 불전 중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건물로 일직선상의 맨 앞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정사각형 형태로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기와지붕이 겹쳐져 있는 풍경이 참으로 멋집니다.


 * 용화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용화전은 미륵불을 봉안한 건물로 미륵불이 출현할 곳이 용화 세계의 용화수 아래라는 데서 이 명칭이 유래하였다.또 미륵불을 모시기 때문에 미륵전이라고도 부른다.미륵불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56억 7천만년 뒤에 이 땅에 출현하여 석가모니가 미처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부처이다.이런 연유로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이 희망의 부처로 삼국시대부터 폭넓게 신앙되었다.


이 용화전은 1369년(고려 공민왕 18)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건물은 1725년 (영조 원년)에 청성대사에 의해 중건된 것이다.이 건물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정면의 중앙 기둥 간격이 넓어 직사각형의 평면 구조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당은 측면의 앞쪽 가장자리에 출입문을 두지만 이 용화전은 특이하게 건물 측면 중앙 칸에 문이 있다. *



* 통도사 봉발탑 : 보물 제 471호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발탑은 석가모니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이다.발우란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식사용기이자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의 상징물이다.이처럼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 앞에 봉발탑을 모신 것은 석가모니께서 입멸한 후 56억 7천만년 후에 이 땅에 내려와 부처가 되라는 석가모니의 뜻을 받들어 미래에 출현하실 미륵불의 출세를 기다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형태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하대위에 간주와 상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육중한 뚜껑을 지닌 발우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조형물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



 대웅전은 남면으로 배치된 정면 3칸, 측면 5칸의 단층 건물이며, 지붕의 종마루가 우물 정(井)자형을 이룬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 통도사대웅전 및 금강계단 : 국보 제 290호


현재 통도사에 남아있는 여러건물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영역은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하여 지어진 대웅전과 금강계단이다.



대웅전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된 것을 1645년(인조23년) 우운대사가 중건한 건물이다.건립연대가 확실한 조선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지붕의 청동으로 만든 찰간을 비롯하여 백자연봉과 무쇠와 청동으로 만든 기와 등은 일반 건축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렵다.


그리고 대웅전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은 지붕모양이 정자형이라는 특이한 구조와 함께 정면과 측면의 구분 없이 동,서,남 모든 방향이 정면성을 보이는 독특한 방향성에 있다.특히 내부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았는데 이는 대웅전 뒤에 있는 금강계단에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





계단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로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현존하는 금강계단은 창건 이후 수차에 걸쳐 중수되었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의 기록에 '계단은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과 같다' 라는 기록을 통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그리고 계단의 사방에는 불좌상을 비롯하여 천인상 신장상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중수 과정에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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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옆의 연못은 구룡지(九龍池)로 불리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가 남아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수행할 때 문수보살이 진신사리와 가사를 주면서 신라 영축산의 독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봉안하라고 알려주었다. 자장이 여덟 마리의 용은 쫓아 보냈으나, 마지막 남은 용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어하여 연못 일부를 메우지 않고 남겨둔 것이 지금의 구룡지라는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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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진전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이 건물에 부처님의 16제자를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나한은 범어로 아라하트라고 한다.그것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큼 수행이 있다는 뜻의 응공,진리에 따라 남을 깨우친다는 뜻의 응진, 더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의 무학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나한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정진과 수행을 거듭하여 아집과 번뇌를 끊어 죽고 사는 것을 초월한 성자를 말한다. 나한을 모신 불전으로는 응진전과 오백 나한전이 있다.응진전에는 일반적으로 증심불과 그 협시불을 중심으로 16나한만을 모신다.이곳 응진전도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 협시불인 미륵 및 제화갈라 보살상과 함깨 16나한만을 모시고 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던 길이 아닌 절을 감싸고 있는 담벼락길로 내려왔습니다. 
열심히 불공을 드린 한 불자의 뒷 모습에서 통도사를 더 많이 알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볼 게 많은 역사 속의 커다란 절 통도사였습니다.



통도사  :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055- 382-7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