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윤이상 기념관의 재발견

커피믹스 2011. 10. 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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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윤이상기념관을 방문한적이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윤이상기념관이 같은 도로를 몇번 뱅뱅 돌았습니다. 

두번째방문은 수월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아직은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초가을 오후였습니다.
윤이상 기념관은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습니다.


윤이상이 받은 독일에서 받은 메달과 훈장에서 짐작하듯이 윤이상은 세계적인 음악가입니다.


윤이상 선생이 쓰던 필기도구,당이어리,사전과안경


  <윤이상>

*윤이상은 아버지 윤기현과 어머니 김순달 사이에서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통영은 풍부한 전통문화로 인해 많은 예술가와 시인들이 꿈꾸며 온몸으로 예술의 혼을 호흡할 수 있는곳이었다.
열세살때 바이올린과 기타를 배우고 연주하며 직접 선율도 써보았다.
자신이 만든 선율이 동네 무성영화를 상영하던 영화관에서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작곡가로서의 첫 꿈을 품게 된다.

*1935년 아버지의 뜻으로 일본 오사카시에 있는 상업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음악원에서 첼로,작곡,음악이론을 배우게 된다.
이때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되어 모여사는 지역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을 보고 사회적,정치적 의식을 갖게 되었다.
1937년 통영으로 돌아왔다가 1939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프랑스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유학한 이케노우치 도모지로에게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다.1941년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4년 일제에 체포되어 두 달 간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광복후 고향으로 돌아가 통영의 예술인들과 함께 민족문화 창출을 목적으로 통영문화협회를 만들었다.
1948년에서 1952사이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작곡을 하였다.1953년 서울로 이주,여러 대학에 출강하며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치고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하였다.1955년 피아노 트리오와 현악 4중주 1번으로 제 5회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한 윤이상은 20세기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공부하기 위해 39세의 나이에 유럽유학을 결심,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 1956년 파리음악원에서 수학 후,1957년 서베를린 음악대학으로 옮겨 보리스 블라허,라인하르트 슈바르츠 쉴링,요세프 루퍼를 사시했다.1959년 네덜란드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을 다름슈타트에서 <일곱 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초연햇다.
동아시아 음악의 요소를 서양음악에 접목시킨 그의 작품은 음악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1964년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서베를린에 정착한 윤이상은 오라토리오 <오 연꽃속의 진주여>.관현악곡 <예악>의 연이은 성공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동백림사건>윤이상은 1963년 4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친우 최상학을 만났다.그 후 여러 번 평양을
 방문하며 김일성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던 박정희 정권은 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1967년 6.17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되어 서울로 소환되었다.유럽으로 건너간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갇혔다.

200여명의 유럽음악인이 대한민국에 공동탄원서를 내어 윤이상의 수감에 대해 항의했다.
1969년 2월 25일 대통령 특사로 석방되어 서독으로 추방되어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윤이상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매년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린다.
 


  기념관 안에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야외무대가 있습니다.
비스듬한 구조가 공연을 잘 볼수있게 해줍니다.

 
무대 뒤쪽으로는 분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윤이상 기념관 옆 2차선 도로를 윤이상 거리라고 합니다.

 

  특별한 도로는 아니고 일반도로입니다.

앞으로 어떤 도로를 만들지 궁금해지는 곳입니다.


윤이상 기념공원 바깥쪽 주차장 끝에는 윤이상선생이 타던 벤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독일에서의 가족과의 단란한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저번에 왔을때 놓쳤던 것입니다.

 

두번째로 재발견한 것은 통영의 골목길입니다.
윤이상 선생 차가 있는 곳 뒤쪽은 나즈막한 주택가였습니다.


세모꼴 모양의 색다른 집이 있는가 하면 
 

쓰레트 지붕에 낙서가 가득한 추억의 집이 있습니다.

 
담배가게 앞 평상에는 할머니들의 아지트입니다.

 

 

 
골목길을 떠올리면 어린시절이 떠오릅니다.
약간은 배고프고 약간은 자유롭던 시절, 골목길이 아이들 놀이터였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윤이상 기념관 가시면 꼭 뒷골목에서 추억속에 빠져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