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최치원의 세이암, 지금 귀를 씻는다는건 sns 잠수 타는것?

커피믹스 2015. 11. 1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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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이야기 탐방대는 녹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체험하고 난 후 하동에 다시 갔습니다.

몇가지 장소와 관계된 한 인물을 좇아 가려합니다.

하동이 관광지로 유명한게 워낙 자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런 인물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더욱더

유명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거꾸로 산세가 아름답고 좋으니까 최치원선생이 머무른건 아닐까요?


첫번째 장소  범왕리 푸조나무, 두번째 장소 세이암,세번째 장소 쌍계사 석문과 진감선사대공탑비입니다.

 그 인물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합천,부산 등등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셨겠죠 ?그 인물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고운 최치원입니다.


최치원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이해가 깊었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이다. 진성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등인 아찬을 받은 점 등으로 미루어 6두품 출신일 가능성이 많다. 

868년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 7년 만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876년 강남도 선주의 표수현위로 임명되었다. 

880년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에 임명되고 비은어대를 하사받았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에 임명되었다. 문장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골품제의 한계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었다. 

이에 외직을 청하여 대산·천령·부성 등지의 태수를 역임한 뒤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 관직에서 물러났다. 산과 강, 

바다를 소요자방하며 지냈고, 말년에 해인사에 들어가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1. 범왕리 푸조나무 : 우리나라에 있는 푸조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다.높이 25m. 둘레 6.25m이며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동서 25.9m 남북 29.2 m 에 이른다.나이는 500살 정도이다.범왕일 푸조나무는 통일신라 말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이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면서 꽂은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자란 나무라고 전해진다.

나무 바로 앞 개울가에는 최치원이 세상에서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고 하는 세이암이 있다.푸조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성 수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경남과 전남지역 산기슭이나 계곡 주변에서 주로 볼 수 있다.느티나무처럼 우산모양으로

 넓게 퍼져 정자나무로 알맞고 바닷바람에 잘 견뎌 병풍림으로도 활용된다.




오래된 것은 그 모양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큰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매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요즘은 동전놓고 빌기도 하는 관광객도 있습니다.



시진핑도 하동에 반해서 ' 동쪽나라 화개동은 호리병속의 별천지'라고 했다고 하는군요,

저도 하동 두번째 오는데 사람들이 하동 하동 하는 이유가 있더군요.



2. 범왕리 푸조나무 앞에서 하동초등학교 왕성분교 담벼락을 따라 올라간 계곡의  세이암




계곡 물이 너무나 맑았습니다.여름에는 더위 피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내년 여름에 꼭 오고 싶은 곳입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전 화개천(세이암)에서 귀를 씻고 지팡이를 꽂아놓고 산으로 들어가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자신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학을 타고 속세를 떠낫다고 전한다.




오른쪽 가운데 위쪽 한문에 세이암 이라고 보인다. 최치원이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고도 전해진다.


지리산 대성계곡은 유리알처럼 맑아 잔잔한 흐름을 이루고 계곡마다 바위를 휘돌아 흐른다.주변에는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이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반석하상에는 하천의 마식작용으로 의해 형성된 포트홀군 (바위구멍)이 확인되고 세이암 글자가 새겨져 있다.세이암에는 

신라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세속의 비속한 말을 들은 귀를 씻고 신선이 되어 지리산으로 입산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곳이 귀를 씻은 곳이라 한다. 한편 최치원이 지리산 옥류에 목욕을 하는데 게가 선생의 발가락을 물었다.선생이 이것을

 고약하게 여겨 그 게를 잡아 멀리 던지며 다시는 여기서 사람을 물지 말라고 했는데 그 이후 게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 참 쉽지 않은 거는 맞는거 같습니다.

옛날에는 귀를 씻고 학을 타고 신선이 될 수 있었던거 같은데... 요즘에는 어떡해야 할까요?

모든 sns 다 끊고 사는게 귀를 씻는게 아닐까요 ㅠㅠ.



3.씽계사 : 쌍계사 입구 쌍계석문은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로 썼다고 해서 유명합니다.

유명한 사람은 죽어서 이름도 남기고 글씨체도 남기네요.

이래서 일반인은 그렇게 낙서를 즐기는 걸까요? ㅎㅎ




쌍계사는 벌써 가을이 와서 평일인데도 단풍놀이 하러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쌍계사 와 보니 유서깊은 절이지만 가을놀이 하기 좋은 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쌍계사 금강문





쌍계사 천황문




 쌍계사 구층석탑 :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쌍계사에서 눈길을 끈 것들입니다.

편백나무를 계란처럼 깍아놓은것과



대나무로 만든 찻잔입니다.

둘다 자연을 닮아 이쁘고 향기로웠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최치원 선생의 진감선사탑비입니다.


진감선사대공탑비  :경상남도 화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경내에 있는 이 탑비는 비신의 일부분이 마멸되었으나 여러 탁본과 판본이 전하고 있어 비문 내용은 완전하게 알려져 있다.비는 887년(정강왕2)에 건립되었으며 서체는 해서이며 최남선은 구양순의 골에 안진경의 육을 붙여 특색을 나타낸 글씨로 평가하였고 구양순체의 엄정 방경한 체격에 우세남의 온아한 필의가 가미된 독특한 필체로 굳센 기상이 부드러운 운필속에 녹아들어 강약이 혼연조화를 이루어 신운을 느낄수 있는 글씨라고도 한다. 비문을 새긴 사람은 환영이다.비문의 내용은 진감선사 혜소의 입당구법과정과 830년 귀국이후 화개곡에서 선법을 펼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비의 서문에 유고와 불교사상이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하고 본 내용에서도 노장사상을 보여주는 용어와 개념들을 다수 사용하여 삼교를 하나로 파악하는 최치원의 사상적입장과 아울러 당시 지식인들의 사상경향을 시사해준다,아울러 쌍계사의 유래 범패의 전래와 유포 효소왕의 피휘사실등도 전하고 있다.



중간중간 전쟁때 총탄의 흔적이 보입니다.

글씨가 꽤나 선명한게 신기합니다.

글씨체도 지금이나 비슷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보는 눈은 비슷한거 같아요.






진감선사탑비 아래쪽 거북이 상입니다.

오래되어 마모되었는데요.



강아지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이렇게 최치원 선생의 하동 흔적찾기를 마쳤습니다.


하동에 꽤나 많은 최치원의 흔적이 있었군요.




범왕리 푸조나무 :  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967 ( 화개초등학교 왕성분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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