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일본군은 지심도 동백보면서 옛사랑을 키웠을까?

커피믹스 2015. 11. 2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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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가을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경남도민일보 자회사인 해딴에의 이야기탐방대 요원으로 평소 가고싶은 곳을 다 가보았기 때문이다.

해딴에에 감사드리고 날로 발전하길 바란다.

이제 거제 지심도를 마지막으로 이야기탐방대 이야기를 마치려한다.



지심도는 모두다 잘 아시다시피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이다.

배를 타려고 평소보다 이른 아침을 맞아 서둘러 지심도 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지심도 동백꽃을 보려고 온 아줌마들이 많았다.



터미널하면 여행이 떠오르고 여행은 설렘을 기대를 갖게 하는 단어다.

거기다가 배를 타고 간다는 거는 여행의 설렘을 플러스 플러스 시켜서 설렘이 폭발하게 만든다.

약간씩 흔들리는 배를 타고 시원한 바깥바다 경치를 구경하며 친구들과 가져온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그런 호사를 누릴수 있어 좋다.

 



바깥경치에 빠져 있을즈음 배는 어느새 지심도에 도착했다.




 

 지심도는 걸으면서 섬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지심도에 동백을 보러 왔기에 동백이 유명한 오동도 정도로 생각했다.

지심도 탐방을 시작하자 내 생각은 오류중의 오류라는 걸 깨달았다.

지심도는 정글 같은 느낌이었다.온통 동백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집도 많이 없고 개발이 덜 된 느낌이 아주 색달랐다.

정글을 탐방하면 뭐가 튀어 나올까 궁금한데 지심도는 그러한 섬이었다. 비온날 뒤라 비에 젖은 바닥이 그런느낌을 더해주었다.






지심도가 정글같이 느껴진 이유는 국방부 소속이고 일제시대 섬전체가 일본군의 요새로 쓰였기 때문이다.

지심도 탐방군대 군대에 일제시대 잔재가 남아있다.




** 지세포에서 동쪽으로 6키로 떨어진 해상에 있으며 조선시대 현종 때 주민 15세대기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군의 요새로서 일본군 1개 중대가 광복직전까지 주둔하였다. 


 현재 약 10여가구, 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멀리서 보면 군함의 형태를 닮았고 남해안에는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내륙의 평탄한 능선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땅을 개간하여 밭과 과수원을 조성하였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며 쌀,보리,고구마가 산출되고 멸치잡이 및 김,미역,굴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섬전역에 동백나무,소남부,유자나무,후박나무 등 37종에 이르는 수목과 식물들이 자라는데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마치 하나의 숲과 같다. 동백나무가 전체 면적의 60-70% 차지한다. 장승포항=지심도 간 하루 5차례(11월-2월은 3차례 운항) 배편 이용, 소요시간은 약 20분,섬내에 민박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




 탐방 시작해서 얼마안되어 만난 민박집, 일제시대 건물이다.

우리나라는 암기와 숫기와 형식인데 일본식은 낮게 부드러운 곡선이 연결된 모양이다.

지심도 사람들은 거의 민박을 하며 산다.



길 가로 우거진 나무숲이 멋드러진다.

지심도 곳곳이 이런 곳이니 힐링하기엔느 딱인듯싶다.



아침일찍 서두른지라 일운초 지심분교에서 점심도시락을 먹고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여기에도 만발한 동백꽃은 너무 화려했다.

동백꽃이 이리 화려한 꽃일줄이야~ 자세히 봐야 이쁘다더니 자세히 보니 참 화려한 꽃이 동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보니 일제시대 포진지를 만나게 된다.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략을 2년 앞두고 계획되었다.

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체를 일본의 병참기지화에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다.

지인이 홍콩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홍콩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떠난후에 그런문화 영향으로 gdp가 높은 복지국가가 되었는데 우리한국은 일본지배후에 남은건 뭐냐고 말한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게 남은 건 아픈상처와 분노, 건질 거는 아주 튼튼한

건축공법 밖에라고 말할수밖에 없을 것 같다 ㅠㅠ.




포진지근처 건물, 탄약고 건물에 지심도 역사문화 안내가 있다.



얼마나 견고한지 아주 새것같다.

여기에서 좀비영화나 스릴러를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지심도 역사 공부좀 하자면 지심도는 영조 30년 (1754) 3월 22일 이후 쓰시마 어민들이 지세포나 용초도 등지로 어업 활동

하고자 찾아왔을대 쉬어가는 곳이었다. 일본인 어선들이 난파되어 지심도에 표류하기도 했다.


 1936년 7월 10일 지심도 포대 건설이 시작되어 1938년 1월 27일에 완공되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이후로 지심도 포대는 농포동 양지암,진해 가덕도와 함께 진해해면방비부대 제 11부대에

소속되어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 이후 미군이 지심도를 점령하고 잇다가 일본군의 포대와 각종 무기등을 수거했다고 한다.






 답답한 포진지를 빠져나와 걷다보니 가슴이 확 트이는 지심도 활주로를 만나게 된다.

일본군들도 여기서 담배하나 피고 가족들 생각에 젖어들었을거 같다.



전망좋은 곳에 흔들그네가 설치되어 있다.






다시 또 길을 나선다.

우거진 숲 사이로 걸어가는데 오래된 이 나무는 동백이다.

동백터널이다. 동백이 활짝 필때면 화보하나 나올 장소다.

다음해 1월쯤이면 동백이 만발할까?너무 늦었을까? 그때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일본의 잔재 서치라이트 보관소의 철문은 삭았고 이끼가 끼고 있었다.


녹색이 옅고 통이 큰 일본대나무





방향지시석도 남아있엇다.



포를 쏘려면 어디진 알고 쏘아야 되니까.



현재는 나무가 우거졌지만 저 나무만 없으면 앞이 확 트인곳이다.



 지심도 해안은 해식절벽 (해식애)으로 유명하다.

파도 조류 등의 침식으로 깎여 형성된 절벽이다.우리나라의 경우 규모가 큰 해식절벽은 주로 동해안에 많이 나타나며 

인근에는 거제 해금강,통영 소매물도 등대섬이 대표적이다. 



히야 ~ 멋지긴 멋지다. 절벽도 전망도 ,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


딱 봐도 일제시대 잔재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

카페를 했나본데 지금은 관리 안되고 있었다.





11월 초인데도 동백이 벌써 피었다.

길 위에 떨어진 동백이 아름답다.

동백은 죽어야 그 빛을 발하는 듯.



일본 잔재 , 일본군 욱일기 게양대를 세웠던 곳에 2015년지심도 주민들이 태극기게양대를  세웠다.

아픈 역사를 잊고 사랑하는 지심도를 위해. 


일본의 잔재,일본군 관사 건물,



지심도가 일제 군사요지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섬인건 확실하다.



곳곳 탐방로에서 만나는 풍광은 너무 아름다우니까.


일본군들도 지심도에서 아마 동백을 보며 잠시나마 가족,연인생각에 눈물흘리고 어서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을것이다.

그들에게 동백꽃이 전쟁생활의 작은 위로는 되지 않았을까 ....


좀 진부할지 몰라도 기회가 되면 지심도 동백꽃과 일본군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라이언일병이야기나 퓨리 버금가는 이야기가 탄생할지도 ㅎㅎㅎ.






지심도 :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동백섬 지심도 터미널 : 경남 거제시 장승포로 56-22

                          경남 거제시 장승포동 703-2 , 055-681-6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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