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계단식으로 지어 전망좋은 양산향교

커피믹스 2015. 12. 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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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교는 유교의 옛성현을 받들면서 지역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교육기관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학교의 기능을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배운다는 건 필요하고 끝이 없는것 같군요.


 양산향교는 1406년(태종6)에 창건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위치를 옮기고 중수를 거쳤습니다. 현재 건물들은 19세기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 두 영역으로 나뉩니다.



양산향교 옆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정문 진입로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정면 출입구인 풍영류는 유생들의 여가 공간 및 여름철 학습 공간으로 이용되었다.향교의 출입구에서 하늘을 날 듯 한

 팔작지붕과 튼튼한 기둥을 받친 풍영루는 정문으로서의 위엄과 함께 향교의 군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높고 경치가 좋아 유생들이 아주 좋아한 공간이었겠습니다.



향교 입구에 비석이 있습니다. 오래된 흔적을 느낄수 있어요.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재


** 1909년 신교육에 발맞춰 이곳에 원명학교가 세워져 청년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다.그 후 양산공립보통학교,양산고등공민학교와 기술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역명이 교동인 것은 이곳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처음 세워진 곳은 현재 양산고등학교 부근으로 추정되며 순조 28년에 군수 황찬희가 교리에 교궁을 현재의 교동으로 이건했고 1985년 대성전,신문(내삼문),명륜당,풍영류 등이 중건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교임이던 정호인이 화를 피하기 위해 대성전에 있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나와 인근 솔밭 고깔바위(일명 변암,현 양산경찰서 서편)밑에 숨겨 위패가 불에 탈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동무와 서무는 중국과 조선의 선철과 선현을 제사하는 곳이며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입니다.

대성전에는 오성,송조이현 ,동방18현,등 모두 25인의 성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오성은 공자,안자,증자,자사자,맹자를 말하고 송조이현은 정호와 주희를 일컫는다.우리나라 18인의 성현은 신라2인(설총,최치원) 고려2인(안향,정몽주) 조선 14인(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를 말한다.


공자를 중심으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제례가 매년 봄,가을에 이곳 대성전에서 봉행된다.(석전대제)


시민무료강좌로 전통예절과 청소년 충효교실,서예,다도 등 여러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

 (양산시청 홈페이지 참조)


동재


명륜당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및 동,서무는 제례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내삼문


양산향교 역시 이러한 배치법,전학휴묘를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런데 양산향교는 가파른 뒷산을 배경으로 해서 

교육영역은 평지에 조성하고 제례영역은 급한 경사지에 조성하였다.



대성전



아울러 대성전은 19계단을 올라가야 되는 높은곳에 지어 마치 신전과 같은 위엄을 갖춤으로써 제례 영역으로서의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내삼문 앞계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 풍경이 좋군요.

그 옛날 학생들도 공부하다 여기서 머리식히곤 했겠어요.


ps) 전주향교에서 성균관스캔들 촬영했지요. 양산향교도 사극 찍을라나요?^^


양산향교 : 경남 양산시 교동 1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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