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치 담궈준 엄마에게 짜증낸 사연

커피믹스 2010. 1. 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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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엄마가 집에 놀러오셨다. 김장전이라 김치도 다 떨어져가고 있을때였다. 엄마는 우리 집에 놀러오시면 항상 김치걱정을
 하셨다.
그날도 점심을 먹은 후 대뜸 하시는 말씀이 '김치 남아있나?'다. 

" 언니는 어제 김치2포기 담던데."
" 김치 없으면 담지."

나는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 한 포기 정도는 있어"
" 일주일 있다가 시댁에 김장하러 갈거야."
" 안 담아도 돼." 했다.

" 그래도 그때까지 먹을 김치 조금 담아라"
" 내가 간 해줄께"

"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 알았다.그래. 니가 알아서 해라. 그래도 김치 2포기만 담으면 좋을텐데."

사실 엄마가 보기에도 막내딸이 불량주부였다. 생전에 김치를 담나. 그렇다고 일을 하러가는것도 아니고 언니랑 비교하면 뭔가
어설픈
불량주부였다. 언니는 요리도 잘하고 김치도 잘 담고 살림은 알아서 척척 해낸다. 그에 반해 나는 반찬이 많았다 작았다가
김치가 있었다가 없었다가 했다. 그래서 우리집에 오면 은근히 잔소리가 있으셨다.
나도 솔직히 언니랑 비교되는건 싫고 이 나이에
잔소리 듣기는  더더욱 싫고 일은 안해도 요새 블로그 한다고 나름 바빴다. 그래서 평소에
엄마가 김치 담으라 할때는 못 이기는 척
담았는데 요즘은 죽어라고 하기 싫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김장 한다는데 엄마는 왜 걱정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답답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은후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쉬고 있다가 엄마는 새마을금고에서 달력을 받아야겠다면서 가까운 금고로 향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엄마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 여기 마트에 배추가 싼데 세포기 살께. 좀 나와라."

" 엄마는!!! 배추 사지 마라니까!!! 김치 안 담아도 돼!!!."

" 그래도 조금만 담아라."

" 아! 싫다니까!! 배추 절대로 사지마라니까!!!"

" 알았다... 김치 조금만 다음면 좋을텐데... ."

나의 강력한 저항에 엄마는 포기하신듯 했다. 

그로부터 다시 5분쯤 뒤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 아이고 무거워라 빨리 장바구니 들고 나와라. "

"엄마는!!! 무거워서 못 들거 왜 샀어!"
" 김치 안 담는다니까!!! 사지마라니까!!!"

결국 엄마는 배추를 사고 마셨다. 아이 짜증나. 내가 알아서 할건데 왜 또 배추를 사는거야.
그렇게 사지 말라고 다짐을 했건만 할수없이 배추를 가지러 나갔다.

무거운 배추를 들고 집으로 가는데 또 화가 났다.

" 엄마 제발 좀 사지마라는 거 사지마세요?네!!! "
엄마는 심드렁하게 "알았다 "만 반복하신다.

그날 나는 엄마랑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하고 찹쌀풀을 끓였다. 소위 생김치라는 것을 담았다.
몇포기 안돼도 김치라는게 공정이 많았다. 배추를 잘라서 소금으로 간을 한다. 마늘을 갈아 젓갈과
 고추가루를 섞는다. 여기다 찹쌀풀을  끓여 또 섞는다. 양념이 준비되면 간이 잘 된 배추에 양념을
꼼꼼하게 발라준다. 마지막으로 김치통에 담고 고춧가루 범벅의 설겆이 들을 정리해야한다.

김치를 다 담고 나니 오후 시간이 다 가버렸다. 블로그에 글 정리하려던 나의 계획이 무너져버렸다.
엄마는 일을 벌려놓고 결국 모든 마무리는 내가 다했다.
물론 엄마가 해주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할 계획이 없는걸 엄마에게 이끌려 해야 한다는게 짜증났다.

김치를 담으면서 나는 툴툴거리며 엄마에게 다짐을 받았다.

"엄마, 사지 말라는 배추 왜 사?"
" 오늘이 마지막이야."
" 다시는 배추 사지마~~~엉???"

엄마가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 알았다.알았어 너네집에서 김치 담자 소리 안하께" 하신다.

저녁에 묵은김치가 아닌 생김치를 상에 내 놓았다. 남편도 아이들도 생김치가 반가운지 맛있게 먹었다.

" 어! 오늘 김치 담았네. "

" 와! 생김치다. " 

가족들의 반응을 보며 나는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엄마가 놀러 안왔다면 이 불량주부는 가족들에게 생김치없는
밥상을 제공했을것이다. 아이들도 묵은김치만 먹다가 생김치를 먹으니 밥맛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엄마 덕분에 가족들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엄마는 늘 걱정이다. 딸네집에 가도 김치걱정. 아들집에 가도 아들이 힘 안들고 잘 사는지 걱정. 걱정투성이다.
자식은 낳을 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어 죽을때까지 걱정을 안고 산다고 한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도 있다.
이 철없는 딸은 아이의 엄마가 되어도 아직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못 헤아린다. 

때로는 엄마가 비논리적이고 답답할지라도 그 속엔 살아온 인생의 연륜이 녹아있다. 김치가 가장 저렴한 반찬이라
엄마는 딸에게 그거라도 해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엄마가 때로는 답답하고 짜증날지라도 그 속 깊은 내면을 보자. 그 내면에는 무한한 자식사랑이 녹아있다.
엄마는 이제 흰머리가 하얗게 세서 한달에 한번 염색을 해야한다. 틀니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가 답답한건 당연하다.

엄마! 제가 짜증내도 마음은 다르다는거 아시죠? 사랑해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