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전라북도

마지막 황손 이석의 '승광재'

커피믹스 2013. 10. 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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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그런 집을 지어요



요즘세대야 모르겠지만 이런 아름답고 포근한 가사에다 따라부르기 쉬운 음이라서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이 바로 조선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의 10번째 아들인 가수 이석씨가 부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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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손 이석씨는 현재 전주한옥마을의 촌장으로 승광재에 살고 계신다.



 현재 전주대학교 사학과의 객원교수로 재직중이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이시다. 대한제국 한성(서울시) 출신으로 호적명은 이해석(李海錫)이다.


황손으로 태어나 사회의 현실 경험부족으로 모후 및 다른 황손들과 함께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친일성향의 불손한 국민들의 태도로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친일파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인사들은 경복궁을 비롯하여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황실복원을 좌절시켜 궤멸시켰다고 전해진다. 또한 친일 매국노 출신의 유신정부 박정희, 5공화국 초기 전두환 때에는 가족 모두가 거주하던 칠궁(七宮,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서 강제로 퇴거당하여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이후에도 역사를 외면한 친일성향의 사회 분위기로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by 위키백과 >


의친왕이 예순넷의 나이에 낳은 열번째 아들인 이씨는 "아침 문안을 드릴 때마다 수염으로 뺨을 부벼 주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며 황실을 없애는 나라가 어디있냐고 얼마저 여유만만 프로에서 나와서 얘기하기도 했다.




승광재에는 황실에 관한 사진이 걸려있다.





의친왕 :  전주. 초명은 평길(平吉). 이름은 강(堈). 호는 만오(晩悟). 의왕(義王)·의화군(義和君)이라고도 한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귀인장씨(貴人張氏)이다. 1891년(고종 28) 12월에 의화군에 봉해지고, 1893년 9월 김사준(金思濬)의 딸과 결혼했다. 1894년 9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전승을 축하하는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에 갔다가 다음달에 귀국했다. 그는 1895년 특파대사에 임명되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을 순방했다. 1900년에는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대학교 특별과에 입학했으며, 그해 8월에 의왕에 봉해졌다. 1905년 4월 미국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육군부장(陸軍副將)이 되었으며, 그해 6월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1919년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과 모의하여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할 것을 결정했다. 이때 김가진(金嘉鎭)·전협 등과 함께 33인 명의로 최후의 1인까지 항전을 벌일 것을 강조한 선언서를 준비했다. 그해 11월 탈출을 감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 안동(安東)에 도착했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그뒤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도일(渡日)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하에 살면서도 배일정신(排日精神)을 고수했다. <by 위키백과>




의왕과 장남 이건공 이우공 사진, 의왕비 연안김씨와 이건공,의왕의 딸 5녀 이해경씨와 그의 모 사진

의왕의 의화군의시절, 의왕의 이경길(의왕의 8남) 황손과 이석 황손




의친왕의 자녀, 이구황세손과 이방자여사, 종묘에 참석하는 순종,젊었을때 의친왕



승광재를 방문해 이석 황손을 뵙고 싶은 사람은 이석 황손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황제 어세,의왕(고종황제5남),영왕(고종황제7남,1907년에 황태자에 책봉),순종(고종황제2남),고종황제사진



순종황제 사진



승광재는 조선 마지막 황실에 관한 역사를 돌아볼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승광재에서 조선의 비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