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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복원되어 쉼터를 주는 동래부 동헌

커피믹스 2015. 8. 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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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동래는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옛 동래읍성을 중심한 인근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동래구는 1957년에 개편된 행정구역명이며 부산광역시의 중북부에 있는 자치구이다.


동래군은 신라 경덕왕 이래 부산광역시의 옛이름이며

 1973년 양산군에 병합되면서 소멸된 행정구역명이다.

동래부는 1895년에 개편된 행정구역이며 부산,울산,거제,포항,경주를 

관할하였으나 소멸된 행정구역명이다.


부산 지하철 4호선 수안역,낙민역에 걸쳐 역사탐방을 할 수 있다.




우선 부산지하철 4호선 수안역에 내려 동래부동헌을 둘러보기로  한다.

수안역 7번  출구로 나가면 동래부동헌 330 m 라는 팻말이 나온다.



동래부동헌으로 가는 길은 동래수안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동래수안시장 옆에 동래부동헌이 있다.

예전에 지나간적 있는 동래부동헌은 지금 재정비되고 있는 중이다.



동래부동헌으로 들어가본다.


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공간으로 일명 아헌이라고도 하며 객사 다음으로 중요한 관아시설로

 이청,무청,항청 등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이다.동래는 일본과 최접경지로서 한반도 

제일의 관방이자 전략요충지로 중시된 만큼 일찍부터 읍성과 관아가 설치되었다.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더욱 중시되어 태조 때부터 진을 두고 병마사가 판현사를 겸하도록 하였고 명종 12년 (1547)에

 도호부로 승격되어 정3품 당상관으로 부사를 임명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동래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크게 인식되어 효종 6년(1655)경주진관에 속해 있던 것을 독진으로 독립시키고 관아도 대대적으로 복구하였다.

동래부 관아는 대원군 집권기까지 빈번히 증,개축되다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를 겪고 부사 정현덕의 주도로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서 읍성가 관아를 대대적으로 증,개축하였다.그러나 1910년 10월 일제는 오랜 행정중심으로서 

위상과 정통성을 말살하고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부산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동래부를 없애고 동래군으로 격하시켰다.

동헌의 중심건물인 충신당은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동래군청청사로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산군

 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동래부 동헌에는 충신당과 좌우의 연심당과 독경당, 바깥대문이었던 망미루 ,

외삼문인 독진대아문등 많은 관아 건물들이 부속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충신당과 연심당을 제외한 건물들은

 철거되었으며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은 온천동 금강공원 일원으로 옮겨졌다.2014년 독경당,찬주헌을 복원하고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이전해왔다.동래부 동헌 일곽은 조선시대 부산(동래)의 행정,국방,외교,교역업무를

 도맡았던 제일 관방의 위상을 함축하는 관아시설일뿐 아니라 왜구의 침략을 막기위한 개혁성론에 따라 근대적 읍성의 축조가 최초로 구현되는 등 조선시대 관방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장소이다.



동래부 동헌마당에서는 일요일에 무형무화재 전수교육 및 동래야류나 동래한량춤 등의 공연이 열린다.



충신당의 모습이다,

충신당 : 이 건물은 조선시대에 동래부사가 공적인 업무를 보던 곳이다.1636년 (인조14) 부사 정량필이 창건하였고

 1711년(숙종37) 부사 이정신이 충신당이라는 현판을 걸었다.일제시대에는 동래군청 청사로 1973년에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양산군 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기도 했다.정명 7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원래는 좌우에 방이 있고 가운데 대청을 두어 수령은 대청에서 공무를 처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동래군청등 관청건물로 사용되면서 벽면,천장,

마루가 개조되었다.현재 부산지방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단일건물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한 동헌 건물조선후기 전형적인

 관아건축 양식을 짐작할 수 있는 문화재이다.





동래부 동헌의 배치와 기능에 대해 나와 있다.






은일루 : 동래읍성 암문에 있던 현판


지희루 : 동래읍성 동문에 있던 현판


무우루 : 동래읍성 남문에 있던 현판



도심속에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동헌



에서 바라다보이는 현대식건물이 대조적이다.





찬주헌이 새로 복원되었는데 신발벗고   올라가서 쉴수 있다.



높아서 시원한게 좋았다.








도심풍경과 대비를 이루는 모습이다.




망미루도 복원되었다.











기와 너머로 알록달록한 수안시장 상가의 그늘막이 대비를 이루는게 색다른 풍경이다.





독진대아문 : 이 문은 조선 후기 동래부의 군사적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조선 후기에 동래부는

 일본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국방과 외교상 중요한 곳이엇다.때문에 다른 고을에 비해 관아의 수도 많았고

 규모도 컸다.이 문의 첫 건립은 1636년 (인조14) 동래부사 정양필이 동래부 동헌을 건립할 대 함께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1870(고종7) 동래부사 정현덕이 중건한 것이다.솟을삼문

 중앙에는 동래독진대아문이라 쓴 현판이 중앙에 걸려 있다.이것은 1655(효종6)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의 

지휘아래 있던 경주 진관소속에서 독립하여 동래 독진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또 아래 좌우의 기둥에는 진변병마절제영과 교린연향선위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 뜻은 동래부가 진변의 병마절제사영이고 대일외교때 일본사신을 접대하는 

관아라는 뜻이다.

이문은 우리 고장에 남아 있는 전형적인 관아대문이다.규모는 작으나 3문형시의 흔하지 않은 건물이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지붕은 솟을대문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천정의 밑에 홍살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원래 외삼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본래 동래부 동헌의 대문으로 망미루 뒷쪽에 있었는데 1930년경에 금강공원 안으로 옮겨졌다가 2014년 8월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졌다.







동래부 동헌이 복원됨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민들 속으로 쉼터도 제공하고 역사공부도 하게 하는거 같아 좋다. 혹시 부산 동래 수안시장 근처가면 꼭 들러보기를.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로 112번길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