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경상남도

영화 '하하하'의 촬영지인 통영 세병관

커피믹스 2011. 3. 18.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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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대표 블로그 따옥따옥 (http://www.naver.com/gnfeel ) 에 실린 글입니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많이 있는 도시입니다.
충렬사에는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세병관을 포함한 통제영지가 있습니다.

충렬사는 도로에 인접한 곳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는데 통영 세병관은 도로에서 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고
이정표가 작아서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작은 이정표와 통영지도로 위치를 찾은 세병관 주위는 어수선한 채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통제영지에 지금 남아있는 건 세병관 뿐이었는데 통제영지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공사가 완료되면 조선시대의 통제영을 제대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통제영지는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자리로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의 자리로 선조 37년(1604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 폐영될때까지 3도(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총지휘했다고 합니다.


<통제영지 는 사적 제 402호이다.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62번지 일원.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

정유재란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천혜의 요항인 이곳 두룡포(지금의 통영시)에 제6대 이경준 통제사(1604년)가 본영을 창건하고부터 제208대 홍남주 통제사 재임 시까지 무려 290여년간 왜적의 재침을 방비하는 조선 수군의 총본영으로 오늘날의 해군본부와 같은 곳이었다.

그 당시에는 세병관,운주당,백화당,중영,병고,장원 홍예문,교방청,산성청,12공방등 100여동의 영문 관아들이 즐비해 있었으나 지금은 세병관(국보 제 305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통제영지는 1998.2.20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향후 연차 계획으로 사적정비에 나설 예정이다. >



통제영지의 중심이 되는 세병관을 둘러볼께요.

세병관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의 주요배경으로 나온 곳이라고 합니다.
문화 해설사로 등장하는 문소리는 세병관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순신 장군을 무척 사랑하는 인물로서
주요 배경이 세병관이라고 하네요.


<국보 제305호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위치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 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고 제 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에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 193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에 연등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며 세병관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 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이다. >


널따란 마루와 문이 없이 탁 트인 구조입니다.

정면 9칸,측면 5칸의 9량구도 단층 팔작집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입니다.

장대석 기단,50개의 민흘림 기둥,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루 중 중간부분에 한 단 높은 마루가 있는데 이것은 궐패단이라고 합니다.



 

궐패단은 조선시대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등에 통제사 이하 막하장수들이 나와 임금님께 예를 올리던 궐패와 전패를 안치했던 공간입니다.






높은 곳에 위치해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천장에 새겨진 연등문양이 빛이 바래 오랜 새월을 짐작케 해줍니다.


 


새로이 정비되는 통제영지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궁금해집니다.

세병관은 통영의 중요한 유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