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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만난 사람들

 지난 2015년10월 11일 일요일 오후에 부산항 제1부두에 갔다.

연안여객터미널을 놔두고 그곳으로 간것은 그린피스의 오픈보트 행사의 하나로 부산경남블로거간담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남블로그공동체 회원으로 있다보니 공익적인 취재거리가 제법 많다.

주로 여행을 쓰는 여행블로거지만 배 내부를 오픈하고 설명을 해준다고 (오픈보트)를 한다니 궁금하기도 하고 옛날부터

이름만 알고 있던 그린피스의 정체가 뭔지 이야기나 들어보려는 맘이었다.



미리등록 절차를 거쳐 내 이름을 말하고 주민증을 보여주자 이런 폼나는 항만출입증을 발급해줬다.

이게 없으면 부두에 들어갈 수가 없다 . ㅎㅎ.




부두가 이런거구나 , 뱃사람들의 거친 세계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찾아서

한참을 걸어들어갔다.

부산항 제 1부두에 정박해 있는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생각보다 컸다.

짙은 녹색이 평화를 느끼게 하는 친환경적인 느낌이 물씬나는 배였다.




 엔진이 있지만 80프로를 돛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보통 배와 달라서 신기했다.

항해속력 7노트이고 최대속력 15노트, 수용인원은 30명이다.


여기서 잠깐 그린피스에 대해 알아보자.

그린피스는 1971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국제환경단체,독립성 유지위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일절 안 받는다.오로지 개인후원자와 독립재단의 기부로만 운영,현재 전 세계55개국에서 기후에너지,해양보호,삼림보호,

독성물질제거,북극보호,건강한 먹거리 등 여섯개 캠페인을 전개중,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011년 설립되었다.




레인보우 워리어 호는 많은 사연을 지니고 있는 배다.


첫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원래 '윌리엄 하디 경' 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농수산부에서 어장 조사용으로 사용되던 트롤 

어선이었다.1955년에 건조 되고 디젤 발전으로 움직이는 영국의 첫 번째 배였다.

래인보우 워리어는 북미 원주민들의 전설에서 따왔다.

이는 지구가 병들고 죽어갈 때 무지개 전사가 구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이야기이다.

배의 상부에 그려진 무지개 무늬와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비둘기는 환경감시선으로서의 배의 

임무를 표현하고 있다.

1985년 프랑스 비밀요원이 설치한 폭탄으로 프랑스의 핵실험을 막으러 태평양으로 떠날 예정이던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침몰했다.

포르투갈 출신의 그린피스 사진작가 페르난도 페레리아가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그린피스의 이름은

 전세계에 알려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핵실험을 반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결국 프랑스는 태평양에서의 핵실험을 포기하게

 되었다.


두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

1989년 7월 10일, 폭탄사고로부터 4년 뒤 두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탄생했다.

두 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원래 어업용으로 1957년 만들어진 배로 유럽 투어로 활동 시작햇으며 뉴질랜드 태즈만해에서 

유망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떠났다.


그 후 배는 수많은 환경 관련 범죄를 막기 위한 항해를 계속햇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남태평양 섬의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2004년 동남아시아에 쓰나미가 덮쳤을때 재난구조선을 활약했다. 

불법 포경,지구온난화 등 바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환경관련 문제들과 맞섰다.


새로운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출항

22녀간 쉼없는 항해 끝에 2011년 8월 16일 두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가 은퇴했다. 2011년 10월 14일 새롭게 탄생한 세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이전의 그린피스 배들보다 훨씬 뛰어난 장비를 갖추었다..세번째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그린피스가 직접 디자인하고 목적에 맞도록 설계하여 지어진 첫 번째 배로 세상에서 몇 안되는 친환경 선박이다.




2015.10.11 오픈보트 행사에 꽤나 많은 부산시민들도 참여하고 레인보우 워리어호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여러가지 체험부스를 보며 환경문제를 공부했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바깥 구경 좀 하다보니 어느새 보트 내부를 체험할 시간이다.



보트 내부 설명은 항해사들이 하는데 동시통역되어 진행되었다.

배안에는 15,16명의 항해사와 선원이 있는데 국적이 12개나 된다고 한다.

영어를 실컷 맘껏 들을수 있었다. 물론 해석이 용이한건 아니었지만 몇 개 단어정도는 알아들을수 있었다.



인상좋은 활동가이자 항해사들의 설명에다가 오픈보트 행사는 스무스하게 진행되었다. 


배를 고치는 곳을 둘러봤고



배앞부분(선수)부분이다.



배 앞부분에 이 배가 2011년에 만들어졌다는 표시를 하고 있는 종이 있다..



배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곳이다.








선실로 내려가는 입구에 이런 환경을 의미하는 그림도 있었다.



배 뒷부분 (선미)에는 헬기가 뜨고 내릴수 있는 착륙장이 있고



헬기가 떡 하니 숨어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흥미있어 한 부분이다.

없는 게 없는 레인보우 워리어호 였다.



배 구경을 마치고 컨퍼런스룸에서 블로거간담회가 열렸다.



피터윌콕스 선장의 발표가 있었는데 1973년부터 환경을 위한 항해를 시작해 30년 넘게 그린피스와 함께 해왔고 1985년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폭파사건 당시 그 배의 선장이었다.

피터 선장은 아이들이 오염된 미래에서 살게 하지 않기 위해 환경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했다.




2015딴거하자 투어는 핵말고 딴거하자는 뜻이다.

부산에서 시작되어 10월 19일 인천에 갔다가 다시 항해를 떠난다.

부산의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막기위한 의지로 부산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사실상 세계초대형 원전단지 탑 5 중 1위와 3위와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고리원전은 8개의 원전이 밀집해 있으며 30km 내 인구가 3백4십1만명이나 된다.


후쿠시마 사고때는  100조원이라고 했는데 고리원전사고시 패해전망은 어마어마 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고 햇다.



숀버니 그린피스 수석 원전전문가에 의하면 원전 산업은 2019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할거라 예상하는데

 


한국은 이례적으로 원전확대정책으로 감소가 아니라 증가 추세라고 했다.





풍력,태양광등 재생에너지는 이미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는 원전사고후 아직도 17만명의 피난민이피난중이고 방사능수치가 현저히 낮아지지 않고 갑상선암 발생자는

증가했다.



이 일로 간 나오토는 반원전 운동가가 되버렸다.



간담회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훨씬 심각했다.

고리 근처 부산,울산은 하나도 안전하지 않다는 오히려 위험한 폭탄을 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환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부산이 자랑하는 해운대도 원전 21km 거리밖에 안되며 

후쿠시마의 교훈을 보고도 당장 일어나지 않으니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에너지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 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답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 윌콕스 선장말처럼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에 나쁜 환경을 물려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17일,18일 그린피스호는 한번더 일반인에게 오픈보트를 하니 배 내부도 구경하며 원전의 심각성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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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 부산항 제1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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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만난 사람들



 2014년 5월에 부산에서 양산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초에 양산 교육감과 시장등 투표를 하였지요.

 

투표결과 진보교육감인 박종훈 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부산은 고등입시에 시험이 없어진지가 오래되었는데 양산은 시험을 치러서 들어가고 교복에 따라서 그 아이가

 평가되어 고교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다고요.

우리 학교 다닐때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그렇다니 좀 놀라웠습니다.

 

박종훈 교육감에 의하면 내년부터는 고교평준화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공부만으로 평가되고 아이의 인성과 적성이 무시되지 않아야는데 말입니다.


이사를 와 보니 사실 양산이 부산보다 학교 문제에 있어서 불편한게 많았습니다.

부산은 초,중학교는 거의 집 가까운데 있어 중학교까지는 편하게 학교를 다니는데 이사를 오니 집 가까이 학교가

 있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가고 구도심은 인구가 빠지는 추세라 학교도 학생이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얼마전 중학교 배정 문제로 학교설명회를 갔는데 양산교육지원청은 해마다 중학진학 민원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눈치였습니다. 엄마들은 가까이 있는 학교를 놔두고 멀리 배정 받게 하기 실은 게지요. 구도심아이들도 신도심 

학교를 선호하고요.

학교건립에 많은 돈이 들고 학생수가 많지 않은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민원이 한두해 쌓인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뭔가 다른 대책을 세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저래 실망인데 그 대신 양산은 장학금도 많이주고 중학교까진가 무상급식도 한다더라구요

그나마 경남은 의외로 복지수준이 높은가 보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얼마전 홍준표 도지사의 폭탄선언에 깜짝놀랐습니다.


 무상급식 없다  -  .


그것마저 없다면 .... 다시 부산을 가야 하나?잠시 고민이 되더이다.



박종훈 교육감과의 간담회에 가봤더니 차분하게 말씀하십니다.


무상급식에 대해 ~ 진실이 승리할것이다.  경상남도와 교육청은 같은 지자체이다. 

중학교까진 의무교육 이다 , 급식도 교육이다. 학교복지는 보편적 복지의 노력이다.

스피커가 작긴 하지만 도민과의 소통, 여론을 통해 골목골목을 다니겠다.

만나보니 차분함속에  힘이 느껴졌으며 열정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12/4 이런 소식이 들리네요.

 친환경 무상급식 지키기 경남운동본부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학부모 1만인 선언문을 통해 학교급식 정상화를 

염원한다며 도와 시.군은 예산지원중단 방침을 철회하라 고 촉구햇습니다.

뿔난 엄마들이 모여서 무상급식에 관해 한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결국 민심이 하나하나 일어나고 있습니다.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애들 밥은 먹여야잖아요 !!! 

세상에서 제일 기분나쁜거는 먹는거 뺏는거라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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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만난 사람들

 

 2013.1.30 수요일 , 블로거 온누리님(바람이 머무는 곳)의 제보(?)로 부산시 구서지하철역에 위치한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보았다.

무료 급식시간은 오전 12시부터였는데 11시10 분부터 많은 어르신들이 무료급식을 기다리고 계셨다.

점심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은 급식장에 빈틈없이 꽉 차 있었다.

무료급식에 이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뉴스에서 접하던 것들이 사실로 다가왔다.

 

혜일암 우신스님

 

1월30일 무료 급식 단체는 노포동에 위치하고 있는 혜일암(051-508-0408)이다.

주지스님인 우신스님이 혜일암 자체비로 12년째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계신다.

재료비를 물어보자 한숨을 쉬시면서도 무료급식의 의지는 굳게 비쳤다.

우신스님이 직접 장을 봐오시고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요리와 배식이 이루어진다.

신도및 적십자, 지하철 등 의 자원봉사자는 대략 25명 정도가 활동한다.

 

 

어르신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마음은 부모님을 공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돈이 없어 식사를 거르시는 어르신이 모두 우리 부모같은 마음인것이다.

 

 

하루 무료급식자는 700명에서 800명 정도이다.

작년에는 600명정도에서 해가 갈수록 느는 추세라고 한다.

그만큼 노인인구는 늘고 사회가 어려워진다는 말일것이다.

 

 

오늘의 메뉴는 카레라이스다.

커다란 솥에 따끈한 카레가 끓고 있다.

12시 배식인데 11시 15분부터 배식이 이루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의 손이 바빠진다.

 

 

밥을  퍼서 김치와 카레를 담아 배식이 이루어진다.

 

 

밥 풀 그릇들이 쌓여있다.

 

 

 

 

 

기다리는 어르신들께 밥을 가져다주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바쁘다..

 

 

자원봉사자들은 밥을 한번 더 달라고 하시는 분들께도 친절하게 밥과 카레를 퍼주셨다.

 

 

음식물쓰레기와 수저는 이렇게 모아서

 

 

밥그릇과 수저는 다시 씻어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분들에게 밥이 나가기 바쁘다.

 

 

식사를 기다리는 줄은

 

 

제법 길게 이어져서 카메라에 다 담질 못했다.

 

 

 

식후 마실물도 여러가지 약재를 넣어 직접 끓여서 보온통에 담아둔다.

 

 

자원봉사자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어느덧 배식은 끝이 났다.

 

 

어르신들의 급식이 끝나고 자원봉사자들의 식사시간이다.

 

 

필자도 카레밥을 한그릇 얻어먹었다.

따끈하고 맛있는 카레였다.

 

 

그 많던 카레가 동이 났다.

 

자원봉사자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화요일에는 정식을 배급했다고 한다.

그 날은 사람이 너무 많아 3시 지나서 일이 끝났다고 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12년동안 묵묵하게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 대접하시는 혜일암 우신스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혜일암 우신스님과 자원봉사자분들 모두 수고가 많으셨다.

우리 사회의 따뜻한 모습을 본 하루였다.

또한 우리 사회와 정치가 해야 할 숙제라는 걸 깨달았다.

 

 

 

혜일암(051-508-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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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만난 사람들



 2012.3.31 토요일 아침 10시 30분 경남도민일보와 갱상도 블로그.100인 닷컴이 함께하는 양산시 송인배 후보 

블로거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켜본 송인배 후보는 인상이 참 좋았고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2004년 출마,2008년 출마, 보궐선거,3번의 낙선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그 동안의 시간동안 양산에 대해 양산의 문제점에

대해 발전방향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산은 양산군(부락)시절에서 신도시가 형성되어 외부인구의 유입으로 도시가 갑자기 발전햇습니다.

인구증가에 비해 아직 도시는 교육,문화,여러면으로 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측면을 해결하기위해 

공공산후조리원설립, 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해소,기초노령연금 2 배 인상,명품산업단지조성, 

부산대공대 양산캠퍼스 이전,장기임대주택공급등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또한 양산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어

 그런 관광요소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양산은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는데 서편은 신도시 활성화가 중요하고 동편은 하수정밀처리장 포화상태로

지역의 개발이 묶이고 고리원전과 산 하나사이로 가깝게 있어 계측시스템센터나 관리가 아주 절실하다고 했습니다.


송후보의 양산에 대한 의지는 충분히 느꼈고 송인배 후보 개인에 대해 들여다 볼까요? 

고향은 서울입니다.송후보의 부모님고향은이북사람인데 6.25때 서울로 건너왔다고 합니다.그러다가 부산으로

 이사를 왔고  대학시절은 부산에서 지냈습니다.

송후보 부모님이 양산으로 온지는 20년쯤전이라네요,(1992년쯤).현재 양산 웅상 서창에 사신답니다.

 

IB communication 대표이고 그 외 선배회사에서 직원으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IB communication 은 서버구축 모델로서 문자메시지 보내기나 팩스보내는 그런 서비스를 하는 기업이라고 합니다.

자녀는 중3 딸 하나구요.


부인과의 연애이야기가 은근 재밌습니다.

요즘 사랑비에 나오는 70년대 대학 풍경 중 축제풍경이 나오는데요.

90년대 학교를 다닌 저도 그 축제의 분위기를 추억할 수 있었습니다.


송인배 후보도 그런 축제 중에 부인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같이 학생운동을 하는 국문과1년선배였습니다.(송후보는 독어독문학과) 5월에 축제(부산대 대동제)가 열려서

 민가협(민주화가족협의회)라고 그때 속해 있던 단체 (동아리쯤)에서는 주막을 열었습니다.

학교 축제에서 주막이 가장 장사가 잘 되었죠. 우리 학과도 파전과 막걸리를 팔았었습니다.ㅎㅎ.

축제 날 밤 먹은 막걸리의 골때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요즘은 워낙 막걸리가 잘 나와서 머리 아픈건 없더군요.


주막에서는 빠질 수 없는 게 막걸리와 파전입니다.부인은 파전을 열심히 굽고 있었고 송후보는 수배상태였다고 합니다.

수배중에는 주로 학교에서 숨어 지냈는데 동아리방에 동료가 소주1병과 골벵이 깡통하나를 넣어주고 밖에서 문을 

잠궜습니다. 그러면 소주1병,골벵이에 의지해 열량을 채우고 수배시절을 버텼던 거죠.


축제가 어느정도 파한 시간 밤12시쯤 남은 파전과 막걸리를 함께 마시던 후보는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자주 지켜보면서 들었던 호감을 그 자리를 통해 표출하게 된거죠.

수배 중인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걱정도 한 몫했습니다. 결혼은 안 하더라도 여자친구라도 하나 있으면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졌겠다는 말씀이었답니다.



그래서 송후보는 몇월몇일, 밤 10시에 전화를 하겠다는 약속을 던져놓고 그 시간에 전화를 했는데 부인도 호감이 있었는지

 벨이 1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알콩달콩 연애시기를 거쳐 94년(만4년만)에 학생운동 수배해제가 되고 95년 가을에 결혼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학교내에서 결혼하는 커플이 몇 몇  있었죠.

학교야외잔디밭에서 결혼을 했는데 피로연을 학생회관 학생식당에서 소고기국밥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너도 나도 축하(?)를 해주어 밥값이 너무 많이 나왔다는군요.


이렇게 송후보 개인도 들여다보고 그의 의지도 들어보았는데요.

블로거 인터뷰를 통해 바라본 송인배 후보는 양산에 대한 열정과 양산에 대해 잘알고 사회복지, 인간에 대한 사랑,

진솔함이 느껴지는  후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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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인여행블로거. 경상남도블로그 따오기 기자단 2기(2010). 2011,2012 경남이야기(경상남도 블로그) 팀블로그,2013년 경남이야기 팀블로그로 활동, 2015.9월부터 양산관광sns홍보단 활동. 2015년 양산시장표창장 수여.2016년,2017년 제3기,4기김해 sns서포터즈. 밀양시2기sns기자, 창원시4기sns기자로 활동중 연락처decemberrose71@hanmail.net www.facebook.com/seongja.ki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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