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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군산여행 2일차, 아침을 간단하게 빵과 음료수로 때우고 새만금방조제를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내려올 계획이다.

새만금은 뉴스에서 많이 접하긴 했는데 실제로 와 보기는 처음이다.



넓고 휑한 길을 달리고 달렸다.

큰 호텔이 여러개 보이는 게 새로 개발되는 관광지구인 듯 했다.

좀 더 나아가니 "새만금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는 팻말을 만났다.



팻말을 지나니 넓은 길이 드러나는 데 바다 윗길이다.

너도 나도 차를 세워 사진을 찍는다.


군산방면


방파제가 얼마나 길고 큰지 대륙의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서는 수평선을 맘껏 볼 수 있다.

파노라마 사진으로도 담기 어려운 곳,



새만금방조제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끝은 어디일까?

그도 그럴것이 새만금방조제는 군산,김제,부안에 이르는 33km의 방조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네덜란드 자위더르 방조제보다 500m 더 길다.



한국의 건설은 아무도 못말린다.

한국같이 도로가 잘 된 곳은 없을 듯.

새만금은 김제,만경 방조제를 더 크게 더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에서 예부터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금만평야라 하는데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댜는 새를 붙여 만든 말이라고 한다.




조금만 가니 작은전망대가 나왔는데 바다 한가운데 서 있으니 시원했다.



여기를 봐도 소실점이 보이고



저기를 봐도 소실점이 보인다.

사진이론을 설명할 있는 소실점이다.



방파제 아래에는 낚시꾼도 많았다.



이정표에는 이 길을 따라가면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반도 국립공원이 나온다고 한다.

하루가 더 길었다면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가 보았을 것이다.

부안에서 꾸물거리면 시간이 모자랄 듯 하여 끝까지 가지는 않기로 했다.



길 건너 휴게소 이름이 해넘이 휴게소인데 바다 가운데 있으니 해돋이 해넘이도 아주 멋질것 같다.

넓어서 해돋이나 해넘이때 차도 막히지 않아 좋을 것 같다.



바닷쪽으로 나무상자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여기 올라서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부안 방면으로 얼마간 더 달려본다.

쭉쭉 뻗은 도로, 스트레스가 모두 날라가는 것 같다.



새만금 오토캠핑장 입구가 있다.

넓고 넓어서 황량할 수 도 있지만 캠핑하긴 좋다.



여기에도 낚시꾼들이 많다.

방파제도 높지 않아 낚시하기 좋은 곳이다.



바다라서 물고기가 많이 낚이는 모양이다.



새만금방조제에는 쉼터가 많은 데 그 중의 하나 돌고래 쉼터이다.



돌고래 모형의 조형물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자리를 깔고 쉬는 사람도 있다.

여름밤에는 특히나 시원하고 좋겠다.


새만금 방조제는 이름만큼이나 길고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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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비응도동 123 | 새만금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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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전라북도 군산에는 일제시대 역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해망굴은 1926년 건립한 것으로 식민지 수탈의 기지가 된 군산이 최고 무역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해망동과 중앙로를 연결하기 위해 건립된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벽에 파인 부분이 총알 흔적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공회당,도립군산의료원,은행사택,안국사(현 홍천사) 등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안에 자리하게 되어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역사의 현장

이기도 합니다.

해망굴 안에는 벤치가 몇 개 마련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보행로입니다.

입구는 같지만 다른 모습의 반대편 방향입니다.

담쟁이 나무가 해망굴 글자만 피해서 담벼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담쟁이도 생각이 있었던 걸까요?

신기한 현상이네요.

해망굴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입니다.

글자 위 아래를 보니 움푹 패인 곳이 보이는데 이 것은 한국전쟁중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흔적입니다.

군산 해망굴은 일제시대, 그리고 한국전쟁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네요.

해망굴이 예쁘고 사진찍기 좋은 장소는 아니지만 역사적인 장소로 꼭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해망굴 수산물시장 방면. 군산은 부산과 비슷한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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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금동 | 해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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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군산여행은 시간여행이자 근대역사 문화여행입니다.

골목을 계속 걷다보면 1925년 무렵 건립한 일본식 히로쓰 가옥이 나옵니다.

관람시간이 하절기는 6시까지 동절기는 5시까지입니다.

일본식 가옥을 보러 온 관광객이 많습니다.

영화에서 자주 접했지만 실물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부협의회 회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입니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습니다.

1층에는 온돌방,부엌,식당,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무로 된 창살에 아랫부분은 나무 윗부분은 시멘트로 우리 건물과 많이 다릅니다.

입구부분에 돌로 되어 있는 것도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다다미방이 있는 2층입니다.

앞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어 사진을 많이 찍는 곳입니다.


1층 유리를 통해 안이 들여다 보이는 데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시대극에서 본 것 같은 장소입니다.

개방을 했으면 좋으련만 바깥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제대로 본 것 같지 않습니다.

기와도 일본느낌이 물씬 납니다.

5월엔 겹벚꽃이 활짝 폈는데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이색적이었습니다.

크지 않은 정원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니 목조를 더 많이 대어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목조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뒤쪽 공간에도 나무를 심어 놓아 전체가 정원같은 느낌이 들었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입니다.

요즘 독립운동가들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요.

최근 본 박열 영화를 보니 정말 일본에 대해 분노가 치밀더군요.

역사를 안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준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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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군산여행은 근대골목여행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평지의 낮은 건물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즐길수 있어 재미있는 곳입니다. 


걷다보면 다양한 악세사리 가게, 먹거리 가게 등이 있어 간단한 쇼핑을 즐기면서 갈 수 있습니다.

전주 한옥마을 처럼 낮은 건물사이의 거리를 걷다보면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오래된 슈퍼도 만날수 있으며 슈퍼에는 옛날과자가 준비되어 있어요.


자전거 대리점 , 두바퀴로 골목여행을 해도 재밌을거 같습니다.

속도감을 즐기며 조금 더 빠르게 골목여행을 할 수 있을거 같군요.

어린아이는 수레에 태우면 재밌어 할 거 같습니다.



우리일행은 초원사진관부터 미즈커피까지 걸어서 근대골목여행을 즐겼습니다.

차로 이동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걸으면서 그 도시를 느끼는 게 더 재밌을 거 같아서죠.



군산의 유명한 빵집 이성당까지 왔는데 .... 엄청 난 이 줄은 뭐죠?

2시간 기다려서 빵 산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네요.

빵을 좋아하는 나는 이성당 빵 맛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인데.... 

결국 일정상 이성당은 포기했습니다.


이성당 빵은 포기하고 미즈커피에서 커피를 마시며 좀 쉬기로 했습니다.

미즈커피는 (구 미즈 상사 )는 1930년대 무역회사와 상업시설로 활용된 근대건축물로 1층은 카페테리아로 운영하고 2층은 북카페로

 조성되었습니다.

미즈커피는 1박2일 촬영지기도 합니다.

미즈커피는 군산명소로 많으 관광객들로 붐볐어요.


관광객이 많았지만 회전율이 좋아서 1층에서 아메리카노와 고구마빙수를 시켰습니다.

양은냄비에 나온 고구마빙수는 시원한데 달지 않고 거기다 고구마맛이 약간 나는 게 별미였어요.

양은 냄비와 고구마가 신의 한수 인 것 같았습니다.


미즈커피 바로 옆에는 장미갤러리가 있어 갤러리 관람도 하고 건물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 찍기 좋았습니다.

미즈커피 바로 옆에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저녁시간이라 문을 닫아 버려서 내부를 못 봤네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옆에 빨간벽돌의 오래된 근대 건축물이 있는데요.

마치 성당같기도 한 이 곳은 옛군산세관입니다.


장미동에 위치한 구세관 건물입니다. 


벨기에에서 수입해 온 적벽돌로 되어 있는 유럽 양식의 건물로, 서울역사와 한국은행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입니다. 

지붕은 연화조동판으로 되어있으며 지붕 위에는 3개의 뾰족한 탑이 있습니다. 외부는 벽돌로 짓고, 내부는 목조로

 지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인이 건물을 설계하였으며, 광무 3년(1899) 5월 1일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906년 청사를 계획, 1908년 6월 20일에 준공하였습니다.


이제 슬슬 해가 지기 시작헤서 근처 한 두군데 더 돌아보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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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장미동 18-2 | 미즈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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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군산여행지로 유명한 초원사진관은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입니다.

심은하와 한석규가 출연한 풋풋한 멜로영화인데 초원사진관은 극중 한석규가 운영하던 사진관입니다.

 

2013년 리메이크 되었다고 하는데 티비로 봐서 또 보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보다 초원사진관이 더 유명한지 연휴에는 방문자가 너무 많아 사진을 제대로 찍기 힘들었습니다.

초원사진관은 초록과 빨간간판으로 후지필름 코닥필름등 필름현상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동네마다 있던 사진관에서 증명사진도 찍고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맡기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초원사진관을 찾는 이유는 추억때문일거에요.

어른들에게 그때의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풍경이겠죠.

초원사진관 내부는 우리가 늘 가던 사진관의 형태였고 곳곳에 한석규와 심은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설명과 관련 사진이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증샷 남기느라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초원사진관은 정신없이 보고 나오기 바빴고 더 재밌게 느껴진건 그 주위 거리를 걸어다니며 풍경을 보고 먹거리를 사먹는게 더 재밌었습니다.


어느 집 담벼락에 시로 된 벽화가 있었는데 여기는 참 맘에 들었습니다.

시는 우리가 소소하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더욱 재밌었습니다.

우리가 즐겨하는 애니팡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 듣게 된다는 지극히 박수치며 공감되는 하상욱 시인의 애니팡이었습니다.

나도 실제로 애니팡 하트를 주면서 오랜 친구와 인사를 한 기억이 쏠쏠합니다.

옆사람 카톡 훔쳐본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남 이야기는 더 알콩달콩하게 보인다는것입니다.

벽화도 일반 벽화와 달리 만화느낌나게 간단하고 재밌어 좋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날개 벽화도 있습니다.

작은 날개인데 날개 벽화는 정말 사진이 잘 나오는 곳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 벽화, 단순하면서 깔끔합니다.

게다가 배경이 흰색이라 사진이 더 잘 나옵니다.

여행하면서 소품 쇼핑하는 거 재밌는데 군산 근대골목은 그렇게 하기 정말 좋은곳입니다.

골목도 넓고 건물은 낮아서 답답하지 않고 걷기 좋고 몇천원으로 재밌게 놀 수 있습니다.

군산 근데 골목에서 사 먹은 슬러쉬 통이 재밌어서 맛도 좀 더 좋게 느껴졌는데 통이 너무 길어 두통이 온다는 게 단점입니다.


군산여행관련글 : 경암동 철길마을 http://decemberrose71.tistory.com/748

                       군산 동국사 http://decemberrose71.tistory.com/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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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신창동 1-5 | 초원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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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철길은 기차가 지나가는 길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지금은 철길을 건널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도로에 철길이 겹치는 곳도 많았다.

기차는 여행을 의미하고 철길은 또한 낭만을 이야기한다.

기차안에서 먹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는 얼마나 맛있었던지.

요즘도 한번씩 기차여행을 한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이런 동요가사가 나온것은 그 시대에는 기찻길 바로 옆에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군산에 가면 그런 마을을 잘 보존하여 하나의 관광지가 된 곳이 있다.

바로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유명관광지가 되어 휴일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기찻길 옆 마을들은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소품들을 파는 가게였는데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철길 제일 가운데 집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 집에는 고양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자 카메라와 아이컨텍트를 하며 자신의 모습을 뽐냈다.

보통 고양이는 카메라를 보면 도망을 가서 숨어서 찍어야 했는데 이 고양이는 사람들과 많이 접촉해 보았나보다.

"야 고양이 봐라 " 면서 고양이 덕분에 사람들이 더 몰렸다.

주인에게 밥값 충실히 하는 군산의 고양이였다.



여행지에 가면 관광상품이나 소품을 사는게 재밌다.

나도 이 가게에서 쇼핑을 했다.

훌라춤추는 여인을 하나 사서 차에 부착했다.

군산은 시간여행의 도시이다.

시간을 거슬러가서 우리가 어릴때 많이 먹던 쫀드기를 연탄불에 구워서 먹는데 체험비가 1500원이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편안하게 고기 구워먹듯이 쫀드기를 구워먹게 설치되어 있는데도 있다.


철길을 유유히 걸어본다.

낡은 주택 사이의 철길은 꽤나 길다.


군데군데 벽화가 있어 사진찍기도 좋다.

특히나 친구,커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이들은 평소 엄마가 먹지마라던  불량식품을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서는 맘껏 먹을수 있다.

불량식품 가게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은 총 길이 2.5km 철길은 1944년 4월 4일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가 생산품과 원료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5~10량의 컨테이너와 박스 차량이 연결된 화물열차가 오전 8시 30 ~ 9시 30분, 오전 10시30 ~ 12시 사이에 마을을 지나갔으며 마을 중간 차단기가 있는 곳과 없는 곳 모두 합쳐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었고 사람사는 동네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속도가 느렸다. 

기차가 지날때에는 역무원 세명이 기차앞에 타서 호루라기를 불고 고함을 쳐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으며 그 사이 주민들은 밖에 널어놓았던 고추 등 세간을 들여놓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들였다.


시속 10키로미터 정도의 느린 열차는 2008년 7월 1일 통행을 완전히 멈췄다.

비록 기차는 사라졌지만 소유의 경계가 없는 문과 벽,빨래줄, 텃밭 등 고즈넉한 마을 일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의 무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지로 사진애호가들의 출사지로 유명하다.



군산 시간여행에 불량식품도 있지만 60,70년대 교복체험도 있다.
지금 교복하고 달리 여학생들은 플레어스커트에 세라형 넓은 깃의 교복을 입었다. 


교복을 입고 사진찍고 즐기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가격은 7000원으로 폴라로이드와 소품을 빌려주고 시간도 무제한이다.



경암동 철길마을에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악세사리 가게가 하나 눈에 띄었는데 빈티지한 외관이 너무 멋스러웠다. 

게다가 세월호 리본도 붙여 놔서 개념있는 가게로 보였다.


철길을 돌아다니다 보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가까이에 있는 군산 짜장과 짬뽕을 맛보기로 했다.

쟁반짜장 과 짬뽕을 시켰는데 쟁반짜장이 부산의 두배의 양이었다.

게다가 가격은 13000원이고 달짝지근하고 쫄깃한게 맛이 괜찮았다.

짬뽕은 홍합이 많이 들어가서 시원했고 얼큰했다.

가격은 6000원.

단무지와 양파까지 많이 줘서 군산 짜장면 집에 반해버렸다.

맛집이라고 알려지지 않아도 양과 맛이 만족스러웠다.


가게 이름은 상하이반점이고 전화번호는 063-442-5777

군산 숨은 맛집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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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경암동 539-4 | 경암동철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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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작년에 일본여행을 갔었다.

지하철도 잘 되어있고 도심전체가 깨끗하고 한국어로 친절한 가이드북이 군데군데 많았고 숙소도 쾌적해서 며칠 더 머무르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보다 일본관광을 선호한다.

일본은 독도나 소녀상 문제 등 정말로 나쁜 주변국이긴 하지만 관광은 가고 싶은 나라이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재밌고 맛있는 볼거리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5월 황금연휴에 전라북도 군산시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군산은 일제잔재가 잘 남아있는 도시고 해서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도 해 줄 겸 선택하였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군산의 흥미로운 도심 모습에 내가 강하게 이끌렸기 때문이다.

첫번째 선택지는 동국사이다.

동국사는 국내 유일한 일본식 사찰로서 군산시 금광동에 있고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다.



동국사 대웅전은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들어온 일본 조동종 사찰인 금강사의 불전으로 건립하였으나 광복 후 조계종 사찰 동국사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른다.대웅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지붕 물매는 급경사를 이루며 건물 외벽에 미서기 문이 설치 되어 있는 등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을 따랐다.법당 내부가 일부 변형되었다.

동국사 입구를 들어서는데 풍겨오는 이국적인 사찰 모습에 잠시 멍해진다.

여기가 일본이 아니었었지~.

에도시대 건축양식이라는데 아주 심플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일본식 정원의 아기자기함이 느껴 졌는데 대웅전 앞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는 인기쉼터였다.


돌담과 어울리는 작은 정원이 갈색의 나무문과 아주 잘 어울렸다.


정원에서 흰 모란꽃과 핑크색 모란꽃을 발견했다.

모란꽃은 특히 여성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모란꽃 모양을 자세히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고돌이 패중 하나인 6번패가 바로 모란꽃(목단꽃)이라는 사실이었다.

화투 패 보다 훨씬 미인인 모란은 부자집 정원에 많이 심어져 있어서 부의 상징이라고 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릴테요.

라는 학창시절 시를 떠올리며 나도 모란을 맘껏 사진기에 담았다.

뒤 쪽으로 돌아가니 커다란 대나무숲이 형성되어 있어 풍성한 잎으로 동국사를 감싸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 연등이 달린 대웅전 내부 모습은 비슷했고 관람객은 불상에 참배를 했다.

벽면이 우리나라 사찰과 달랐다.

보통 평평한데 동국사는 가로칸이 있으며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 요사채에서 본 종각


범종각도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범종은 작고 위쪽에 매달려 있으며 아래쪽에는 부처님 돌조각이 있다.


종각 바깥쪽에도 부처님 인 듯한 돌조각들이 여러개 있다.


군산 동국사에는 또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군산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위안부 소녀의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알리기 위해 2015년 8월에 설립되었다.

군산 평화의 소녀상은 그리운 조국을 향해 해안가에 서서 간절하게 보며 상념하는 소녀상으로 표현되었다.


일본식 사찰에서의 평화의 소녀상은 정말 깊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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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금광동 135-1 | 동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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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순천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불보,법보,승보) 중 하나인 승보사찰로서 유명하다. 

신라말 체징이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것에서 비롯되어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대찰로 중건된후 고려부터 

조선초까지 16명의 국사가 배출되었다.



전북 완주에도  송광사가 있다.

넓은 평지에 자리잡아 접귾하기가 좋았다.



절 입구에 거대한 고인돌이 있었는데 관리가 안되고 설명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전북 완주 송광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에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다.

경문왕 7년(867)에 구산선문 중 도의국사의 가지산파 제3조인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 중창되었다.그 후 폐사가 

되어 주춧돌만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던 것을 고려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대성지임을 아시고 표시를 해두었고, 

순천 송광사를 개창한 후 제자들에게 본사를 복원,중창할 것을 부탁하여 수백년이 지난 조선 광해군 15년(1622)에 웅호,숭명,운정,득신,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중창하게 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기원하고 국난으로 돌아가신 일체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던 곳이기도 하며 병자호란때 전주사고(왕조실록)을 지키기 위해 승군 700명이 머무른 곳이다.






일주문은 현재의 위치로부터 3km 남쪽 밖인 나드리(무주,진안방면 도로 입구)에 서있던 것을 1814년(순조14년) 조계교가 있던 곳에 옯겼다가 1944년 해방되기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이 절은 원래 백련사라  불렸으며 800동의 당우와 600승려들이 살아 16방주(주지)가 있었다고 하니 규모가 아주 컸었다.

송광사의 입구에 세워 속세와 불계의 경계역할을 하는 상징물인 일주문은 조선시대에 지은것이다.









절을 들어가려면 항상 거쳐야 하는 곳 천왕문이다.





천왕전과 소조사천왕상

보물 제 1255호


송광사는 4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을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 조선시대에는 사찰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신다.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인조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수있는 글이 있다.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전은 조선 인조 14년(1636)에 벽암국사가 짓고 철종 8년(1857)에 제봉선사가 한번의 공사를 더해 현재에 이르렀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우측에 아미타부처님 좌측에 약사 부처님을 각각 소조로 모셨다.전각안에

 모셔진 부처님으로서는 규모가 매우크다.대웅전 현판은 선조의 8번체 아들인 광해군 동생 의창군이 쓴것이다.인조  14년에 세운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




종루는 종을 달아놓은 열십자형 2층 누각으로 송광사 도량을 장엄하는 가치가 크다,열십자로 된 종루 중앙칸에 범종을 모시고 동,남,서 3칸에 목어,운판,법고를 각각 모셨다,종루의 지붕은 중앙에서 모아지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고 마루밑의 기둥은 모두 원형기둥을 세워놓았다.




불교국가였던 우리의 역사를 완주 송광사에서 한번 되짚어 보았던 시간이었다.


참조 : 송광사 홈페이지 http://www.songkwangsa.org/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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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 송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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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전북 전주를 갈때 였다.

아들이 화장실을 자주 가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여러휴게소를 들렀다.



그렇게 전주를 향해 차는 열심히 달려가는데 왼쪽편에 마이산 봉우리가 보였다.

전북 진안이 가까이 있다는거다.

마이산 봉우리는 가면 갈수록 가까워졌다.



마침 아들이 또 화장실을 가자고 해서 진안휴게소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진안휴게소는 지은지 얼마 안되었는지 깨끗했다.



저쪽언덕에는 정자와 길이 나 있었다.




정자로 가는 원목데크는 바람개비로 꾸며져 있었다.



올라와보니 저쪽건너편에 마이산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왓다.



정자이름은 마이정이다.



정자에서 바라보니 주차장도 한눈에 들어오고



마이산이 조금 더 아래로 보인다.



정자입구에는 마이산의 유래와 마이산 사계절 사진이 있다.


마이산의 유래 :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86m의 암마이봉과 680m의 숫마이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신라시대 서다산 

고려시대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말귀를 닮았다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왓다.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불리운다.


마이산은 호남정맥에서 금남정맥의 분기 지점이며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으로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정에 위치.


약 1억년전에 생성된 수성암으로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형성된 바위산으로 세계 유일의 부부봉이며 명승 제12호로 지정


많은 전설과 조선 개국의 설화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시대 임금님위 용상뒤편 천상일월도의 기본이 된 산이다.


마이산에는 마이산석탑,청배실나무,줄사철나무,괘불탱화,이산묘,타포니지형화엄굴,탑영제,역고드름의 신기한 볼거리로 

세계최고의 여행안내서 미슐랭 그린 가이드 최고 명소로 선정된 신비한 명산이다.



진안휴게소는 특색있는 전망으로 색다르다.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으니 마이산을 더 자세히 보고싶으면 망원경을 이용하면 된다.



 진안휴게소를 지나친다면 마이봉의 기운을 멀리서  나마 느끼고 가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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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 뚜레쥬르 진안휴게소 익산방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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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그런 집을 지어요



요즘세대야 모르겠지만 이런 아름답고 포근한 가사에다 따라부르기 쉬운 음이라서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이 바로 조선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의 10번째 아들인 가수 이석씨가 부른 노래다.

.



황손 이석씨는 현재 전주한옥마을의 촌장으로 승광재에 살고 계신다.



 현재 전주대학교 사학과의 객원교수로 재직중이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이시다. 대한제국 한성(서울시) 출신으로 호적명은 이해석(李海錫)이다.


황손으로 태어나 사회의 현실 경험부족으로 모후 및 다른 황손들과 함께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친일성향의 불손한 국민들의 태도로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친일파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인사들은 경복궁을 비롯하여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황실복원을 좌절시켜 궤멸시켰다고 전해진다. 또한 친일 매국노 출신의 유신정부 박정희, 5공화국 초기 전두환 때에는 가족 모두가 거주하던 칠궁(七宮,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서 강제로 퇴거당하여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이후에도 역사를 외면한 친일성향의 사회 분위기로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by 위키백과 >


의친왕이 예순넷의 나이에 낳은 열번째 아들인 이씨는 "아침 문안을 드릴 때마다 수염으로 뺨을 부벼 주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며 황실을 없애는 나라가 어디있냐고 얼마저 여유만만 프로에서 나와서 얘기하기도 했다.




승광재에는 황실에 관한 사진이 걸려있다.





의친왕 :  전주. 초명은 평길(平吉). 이름은 강(堈). 호는 만오(晩悟). 의왕(義王)·의화군(義和君)이라고도 한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귀인장씨(貴人張氏)이다. 1891년(고종 28) 12월에 의화군에 봉해지고, 1893년 9월 김사준(金思濬)의 딸과 결혼했다. 1894년 9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전승을 축하하는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에 갔다가 다음달에 귀국했다. 그는 1895년 특파대사에 임명되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을 순방했다. 1900년에는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대학교 특별과에 입학했으며, 그해 8월에 의왕에 봉해졌다. 1905년 4월 미국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육군부장(陸軍副將)이 되었으며, 그해 6월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1919년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과 모의하여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할 것을 결정했다. 이때 김가진(金嘉鎭)·전협 등과 함께 33인 명의로 최후의 1인까지 항전을 벌일 것을 강조한 선언서를 준비했다. 그해 11월 탈출을 감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 안동(安東)에 도착했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그뒤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도일(渡日)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하에 살면서도 배일정신(排日精神)을 고수했다. <by 위키백과>




의왕과 장남 이건공 이우공 사진, 의왕비 연안김씨와 이건공,의왕의 딸 5녀 이해경씨와 그의 모 사진

의왕의 의화군의시절, 의왕의 이경길(의왕의 8남) 황손과 이석 황손




의친왕의 자녀, 이구황세손과 이방자여사, 종묘에 참석하는 순종,젊었을때 의친왕



승광재를 방문해 이석 황손을 뵙고 싶은 사람은 이석 황손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황제 어세,의왕(고종황제5남),영왕(고종황제7남,1907년에 황태자에 책봉),순종(고종황제2남),고종황제사진



순종황제 사진



승광재는 조선 마지막 황실에 관한 역사를 돌아볼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승광재에서 조선의 비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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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옛날부터 있었고 사람들에게 만남을 부드럽게 해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준다.

때론 과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술이 없다면 만남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싶다.






전주한옥마을을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보다가 전주전통술박물관을 만났다.

박물관이라는게 어떤 특정한 것을 자세히 보여주는것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전통술에 관해 궁금한것을 자세히 모아놓았다.


술의 기원은?

<인간과 술의 만남>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을까? 

옛문헌의 전설과 신화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인류보다 원숭이나 동물들이 먼저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태곳적에 과일나무 밑에 바위틈이나 웅덩이에 무르익은 과일이 떨어져 쌓이고, 문더러져 과즙이 괴이면,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에 의하여 발효가 일어나 저절로 술이 빚어지게 되었다. 주변을 지나던 동물들이 목을 축이느라 웅덩이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가끔 아파리카에서는 코끼리나 멧돼지 등이 자연발생적으로 고인 술을 먹고 휘청거리고, 딩구는 것이 발견되어 

진다고 한다. 영리한 원숭이들은 우연이 마신 술 맛에 반하게 되었고,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직접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였다는데, 그 방법은 과일을 이용하여 바위틈에 담아 술을 만들었고, 특히 놀라운 것은 도토리를 씹어서 술을 담그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으나, 술은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시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음용하여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유적에서 술빚는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문자로 기록된 고서중에 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기록한 전설적, 신화적 내용이 많이 발견된다. 여하튼, 영리한 인류는 술의 발생 비밀을 인간의 것으로 소화하여 신비의 음료를 제조하게 되었고, 이 쓴 맛의 액체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행동에 놀라운 영향을 끼쳐오고 있습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이 흘렀으나 기본적인 양조기술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까닭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 당화기술의 발달>


옛 유적으로 보아 B.C 6000경부터 인류는 와인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든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곡물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술을 빚게 된 것은 B.C.4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인간이 과일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던 방식에서 곡식을 이용하기 까지는 20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시간이 걸린 이유는 알콜발효란 당을 효모가 섭취하여 알코올을 생산하는 과정인데, 과일성분은 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곡물에는 전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곡물에 들어 있는 전분은 효모가 직접 이용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술이 만들어 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곡물로 술을 빚기 위해서는 전분을 분해하여 당화(糖化)하는 과정이 선결되어야만 했다. 당이란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성하는 것으로 포도당, 엿당, 젓당 등이 있고, 이들 단당 중 대표적인 포도당은 포도 등의 과즙에 단당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은 당을 전분형태로 씨앗이나 곡물의 뿌리에 저장하는데 전분차체로는 발효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 당화를 행하였을까? 당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보리나 수수가 발아할 때 생성되는 당화 효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서양의 맥주, 위스키를 제조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곰팡이가 자라면서 발생시키는 당화효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동양의 막걸리, 약주, 청주, 소주 등이 있다.

이러한 당화 방법의 발견은 양조기술의 발달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서양의 맥아와 동양의 누룩이 술도가의 신주단지처럼 여겨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 왜 낮술이 잘 취하는가?>


낮에 마시는 술이 잘 취한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점심 식사때 마신 반주 몇 잔에 이상하게 금방 취하는 일이 있다. 어째서 적은 양의 술이라고도 낮에 마시면 빨리 취하고 저녁에 마시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 여기에 흥미있는 실험을 한 것이 있는데, 하루 중에 여러 시간대에 쥐에게 알콜을 투여하여 그때의 신체조직의 감수성을 조사한 것이다. 이 실험에 따르면 알콜의 감수성에는 하나의 리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장기의 알콜 감수성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은 저녁의 활동기이고 그것은 하루 중 감수성이 가장 낮은 시기에 비하여 7배나 되었다. 또한 뇌의 감수성은 쥐의 활동기의 중간에서 후반 즉, 한밤중에서 새벽녘에 걸쳐 가장 높았다. 이것을 인간의 생활 패턴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장기의 감수성이 고조되는 것은 아침이고 뇌의 감수성이 높아지는 것은 밤이라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해 아침이나 낮의 술은 몸에 영향을 주고, 밤의 술은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낮술에 취하는 것은 단순한 기분만은 아니고 생리학적으로도 확실히 근거가 있는 모양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우선 술을 왜 술이라 부르는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술자리에서 술의 어원과 전통술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인정받을것이다.


술은 일반적으로 알코올 성분이 있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를 총칭하는 것이다.

<주세법> 상에서는 알코올분 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한다.술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달해온 가장오래된 가공음료 중 하나이다.


술의 어원은 "수불 - 수블 - 수울 - 수을 -술 "


알코올 발효가 이루어질 때 쌀,누룩,물이 혼화된 술덧에서 열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품이 괴어오르며 부글부글 끓는 현상이 일어난다.


원래 물만 있던 항아리에서 열이 나면서 끓는 현상을 보고 "물에서 불이 난다. - 수불 " 이 언어학적 변천과정을 통해 오늘날 "술"이라는 단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통술 빚기 과정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잘 되어있다.


백세 및침지 : 쌀의 성분 중 전분 이외의 영양분이나 불순물 제거하는 작업


고두밥 짓기 : 누룩의 효소에 의해 분해,당화가 용이해지고 아울러 발효가 원활해 지도록 곡물을 잘 익힌다.


고두밥 냉각 : 재료는 얼음처럼 차갑게 냉각시킨다.



항아리소독 : 술을 담을 항아리는 연기소독, 수증기 소독 열탕법등으로 소독한다.



재료혼화 : 쌀,누룩,물을 잘 섞어준다.


항아리에 담기 : 술덧을 항아리에 담는다.


보쌈하기 :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발효를 시킨다.


술독 냉각하기 : 발효가 끝난 술독을 10도 이하의 온도로 냉각한다.


후발효 :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서늘한 공간에 30일간 후발효한다.


 


전통주는 그 형태에 따라 탁주와 청주, 소주(증류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받아내면 ‘청주’이고 용수를 박지 않고 그냥 걸러내서 얻은 뿌연 술을 ‘탁주’라 합니다. 흔히들 탁주를 막걸리라고 하는데 ‘막걸리’는 탁주를 거를 때 물을 넣어서 ‘막 걸렀다’해서 ‘막걸리’라고 합니다. 즉 ‘탁주’는 물을 넣은 것이 아니고 막걸리는 물을 첨가한 것을 말합니다.

‘소주’는 청주, 탁주 등을 가열하여 증류기(소줏고리)를 통해 얻은 도수 높은 술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높은 도수의 주정을 만든 뒤 물을 타서 희석시켜 만든 것으로 쓴맛을 줄이고 가미하기 위해 각종 식품 첨가물을 첨가한 것입니다.<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술에 관한 제례용기가 진열되어 있다.



술에 관해 궁금하고 체험을 원한다면 전주전통술박물관으로 가면된다.


http://uris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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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을 돌다보면 최명희 문학관을 만난다.

 

 

 

최명희씨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주한옥마을에 와서야 최명희씨가 전주출신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게되었다.

 

 

최명희 작가에 대해 조금 알고 가자.

 

"전주는 작가의 고향이자 문학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전주 풍남동(당시 화원동)에서 태어난 작가는 풍남초등학교

(1960년 졸)와 전주사범학교 병설여자중학교 (1963년 졸), 기전여자고등학교(1966년 졸)를 거친 뒤,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 1968년 영생대학(현 전주대학교) 야간부 가정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수료했다.
이 기간 중 작가는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서무직에 종사하기도 했다. 1970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

 1972년 졸업과 동시에 기전여고에 교사로 부임하여 서울 보성여고로 옮기기까지 2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혼불』 출간
이후,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12월 11일 몹시도 차고 매운 날, 지병인 난소암으로 영면(永眠), <전주시민의 장>으로 장례 후 모교인 전북대학교 부지 건지산 중턱에 안장됐다. "

 

 

 

 

최명희길과  생가터 가는길은 전주한옥마을내의 동학혁명기념관 → 경기전 뒷담 → 이어지는 좁은 길 →

 한 중간에 생가터 비 → ‘ㄴ’자형 골목이 최명희 길 → 길 끝 최명희문학관 후문 으로 이어진다.

 

 

 

 

최명희 작가의 대표작 혼불은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代)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발표 1996년 12월 전10권 완간
수상 단재상,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직후부터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2000만 원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1부가 당선되었고,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한 뒤 1996년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간된 최명희의 작품이다.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김열규는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 최명희는 이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고,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나가 1만2천장을 썻다니 그 정성이 소설에 나타나는게 아닐까?.

 

 

 

 

소설 혼불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재밌기도 한 표현이다.

 

작가가 쓴 만년필과 자,가위.원고끈

 

 

 

바깥에 쌓여진 방명록만 봐도 얼마나 많은이가 다녀갔는지 알겠다.

 

최명희 문학관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꼈다.

 

최명희 문학관  http://www.jjh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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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오목대에서 저쪽 건너편 그림이 그려진 육교를 건너면 마을 하나가 나온다.

 

 

자만마을 벽화갤러리라고 되어있는 벽화마을 이다.

 

 

흰 바탕의 회색갈매기가 생동감 있다.파란 지붕과 흰색이 어우러져 바다를 연상케 한다.

 

 

버스 정류소에 버스가 들어오는 벽화는 원래 벽의 굴곡으로 더 생동감 있어졌다.

 

 

돌고래 머리에서 선인장이 자란다는 상상은 동화적이다.

 

 

스머프 마을인지 버섯위에 집들이 재밌다.

어릴적 저런 상상화를 그린 기억이 있다.

 

 

숲속동물마을인지 동물 머리만 가지런한게 독특하다.

 

 

집옆 전봇대는 나무가 되어 동물들과 어우러져 있다.

 

 

꽃, 하트, 나비, 별 , 피아노는 소녀적 감성을 아주 잘 나타내는 소재이다.

 

 

 

튜울립이 금방 필듯한 벽화도 있고 크고 노오란 꽃잎이 유유히 날아다닌다.

 

 

벽화마을을 다니다 힘들면 벽화 의자에 앉아도 좋다.

 

 

파도를 아주 색감있게 살아있게 그린 작품이다.

피노키오 동화책에서 본것 같기도 한 그림이다.

 

 

나무계단을따라 올라가면 바람개비가 도는 언덕이 나온다.

 

 

벽돌담에 핀 하트꽃이 참 곱다.

 

 

꽃다발안에는 장난감도 숨어있다.

 

 

어느소녀의 꿈일까? 편안하고 달콤해보인다.

 

 

하늘을 날아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녀본다.

 

 

제일 재밋는 벽화는 창문을 키다리 아저씨가 선물상자로 변신시켜 들고 가는 벽화이다.

 

이목대도 한번 보고가도 되는 곳, 자만마을 벽화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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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에 이어서 전주향교를 방문하였다.

이곳은 성균관 스캔들등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인기명소이다.

 

본디 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약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씩 있다.

벌레를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오랜 시간 학동들과 함께한 버팀목으로 자리했으니,학업정진과 임시합격을 기원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주향교 : 사적 제379호,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학교이다.

전주향교는 세종23년(1441) 경기전 근처에 지었다가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다.그러나 향교가 전주성 밖에 있어

 다니기가 불편하자, 선조 36년(1603) 전라감사 장만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경내에는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계성사,중국과 우리 나라의 훌륭한 유학자 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서무,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그리고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한 동재와 서재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한컷씩 찍게 만드는 400년된 은행나무이다.

 

400년이라는 시간을 담고 있어 자꾸 눈이 가는 나무이다.



 

간재 전우(1847 -1922 )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율곡 이이의 학설을 계승한 성종심비등

새로운 성리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조선 최후의 유학자로 불리는 간재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마침내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뜻에 따라 섬을 옮겨 다니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6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간재의 제자들은 이소 전주향교를 중심으로 왕성히 활동했습니다.


 




 

명륜당 앞의 이 나무는 성균관스캔들의 유아인이 올라가 사색을 즐기던 곳이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효를 위해 입신양명을 버린 월당 최 담부터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간재 전우와 그의 제자인 삼재(금재,유재,고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이곳 한옥마을은 선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선비체험길(2시간소요) : 최씨종대- 오목대 - 이목대 - 창암 암각서 - 한벽당 - 금재 고택터(전주전통문화관) - 

완판본문화과 - 강암서예관 - 양사재 - 남안재 - 전주동헌 - 전주향교


선비체험길(1시간소요) : 전주향교 - 남안재 - (동산길) - 오목대 - 이목대 - 창암 암각서 - 한벽당(한벽굴) -

 완판본문화관 - 전주동헌


 


 

명륜당 툇마루는 여행자가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여기가 포토존이기도 한 곳이다.


 

문이 문을 보고 있는 구조. 옛 건물에서 많이볼수 있는 액자 구조이다.

 

아이들은 역사공부 좀 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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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전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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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동성당과 풍남문을 둘러보고 그 근처 경기전으로 향하였다.



이 곳 경기전 일대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경기전을 비롯한 많은 역사 유적과 유물이

 자리잡고 있다.본래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많은 부속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였으나,

 일제 강점기시대 때 절반의 땅을 잃고 부속 건물은 철거되었다.이후 점차 복원하여 옛 모습의 일부나마 되찾은 경기전 

경내에는 조선 예종대왕의  태를 묻어두었던 태실과 그것을 기념하는 비석,그리고 조선 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가 있다.

경내의 뒤쪽에는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셔둔 조경묘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 태조어진을 모신 신성한 공간이라 경건하게  관람하여 달라는   글귀가 있다.

가운데 길은 신도이다. 인간은 갓쪽으로 다녀야 한다.




제기고는 제향(제사)때 사용하는 각종 그릇,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이다.제사때 사용하는 그릇은 일반 그릇과 달리 정갈하고 성스러운 물건이어서 별도의 건물에 보관하여야 하는 것이다.대개 제기고와 같은 건물은 바닥을 마루바닥으로 만든다.마루바닥은 지면과 분리되어 있어 습기가 차지 않아 기물을 보관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경기전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낮은 담너머 전동성당이 보인다.



묘하게 어울리는 풍경이다.

역사와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 가능한 그림이다.

낮은 기왓집은 편안함을 준다.



어정은 임금의 음식을 만들거나 임금이 마실 물을 기르는 우물을 말한다.그리고 종묘(역대 여러 임금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사직단(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토신인 사와 곡신인 직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등에서 임금이 참여하는 제례

(제사)에 사용하는 우물도 어정이라고 한다.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셨던 경주의 집경전,평양의 영승전,전주의 경기전

 우물도 어정이라고 하였다.어정은 깨끗하고 성스럽게 취급해야 하므로 주위에 담을 두르고 문을 설치해 두기도 한다.





잔디와 수직으로 뻗어있는 나무를 보니 시원한 느낌이다.



저 대청마루에 앉아 사진도 찍어보았다.


경기전에 와서 문화재 공부도 하고 쉬었다 가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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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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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풍남문을 가보았다.

 

 

풍남문은 전통시장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광장을 지나 보이는 저것이 풍남문이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1768)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하였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이며 풍패란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위에 세운 누각 윗층의 기둥이 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전통적인 풍남문의 모습과 전동성당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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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풍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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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사이 골목을 거니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외 여러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전주 전동성당을 먼저 가 보았는데 이름부터 뭔가 느낌이 오는것 같았다.

직접 전동성당을 보니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데 여기가 한국일지 의심스러운 건물이었다.

 

 

 

 

전주 전동성당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이 성당은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운 성당이다.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언(야고보)

그리고 순조 원년(1801)에 호남의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풍남문 밖인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이들이 순교한 뜻을 기리고자 1908년 프랑스 신부 보두네가 성당 건립에 착수 1914년에 완공했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면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 복고양식의 이 건물은 인접한 풍남문,경기전과 더불의 전통 문화와 서양문화 융합의 상징이 되고 있다.

 

 

 바깥전경에 놀라서 전동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본 풍경이다.

여기서 영화 '약속'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성당내부에 들어오면 모두 엄숙한 성당분위기에 압도된다.

 

 

색다른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성당투어를 마쳤다.

 

 

 

성당야경은 공포영화 처럼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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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천주교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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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한옥마을이 아름답다는 것은 다음뷰 블로그를 통해 올라오는 많은 사진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한국 구석구석 볼곳도 갈곳도 정말 많다. 전라도  쪽은 멀다는 느낌에 쉽게 가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가 보니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부산에서 3시간 정도면 가능했다.

 

 

전주 한옥마을 숙박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예약을 해 놓은 백련마을 고택 체험관이다.

여기는 음식점도 같이 겸하는 곳인데 지은지 얼마 안되 깨끗하고 방이 많아 좋다.

한옥에서의 하룻밤이 기대된다.

우선 짐을 풀어놓고 한옥마을 구경에 나섰다.

 

한옥마을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낮은 함성이 흘러나왓다.

왜 사람들이 한옥마을 한옥마을 하는지 알것 같았다.

외국사람도 이 나즈막한 마을에서 평온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기 충분한 곳이었다.

 

 

한옥만으로 이루어진 집들사이 나즈막한 돌담들 사이로 기와가 보이는게 편안하고 예뻤다.

고층빌딩 숲속이 왠지 어지럽고 피곤한건 건물이 너무 높아 시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거다.

 

 

 

돌담 옆 장독대는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좁은 길을 벗어나 길이 만나는 네거리에는 네거리슈퍼가 있고 망고라는 예쁜 소품가게가 있다.

여기말고도 전주 한옥마을 전체에 몇군데나 더 있다.

 

 

정자가 있어 쉬었다 갈 수 있다.

 

 

마을 구경은 계속 된다.

한옥마을은 거의다 숙박, 체험위주의 집이다.

 

풍남헌이란 곳은 1934년 가옥이 신축된 이후로 두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줄곧 가정집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가 2004년 풍남헌이란 이름으로 다도예절과 녹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다원 및 한옥체험공간으로

 바뀌었다. 풍남헌 처마에 달려있는 비둘기 모양의 장식이 마음에 들어 집 주인이 가옥을 매입하였다고 한다.

당시 한옥마을 일대 집의 대부분은 비둘기 장식이 없이 喜자만 달랑 있었기 때문이다.풍남헌은 전통한옥 고유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풍남헌으로 개축할 때 곡선을 살리기 위해서 기와 와공도 놀랄정도로 상당한 양의 적심이 들어갔다.

또한 특수한 목재와 기와를 사용하여 고풍스러움을 한 층 더 강화하였다.

 

 

 

 

한옥마을을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있다고 한다.

평일 오후였는데 문화해설사와 함께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먼저 오목대로 모두들 함께 올라갔다.

오목대는 높아서 한옥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한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것이 추억에 젖게 하면서도 예쁜 풍경이었다.

 

 

 

 

이목대와 오목대가 있는 교동의 옛 이름은 자만동이었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던 곳으로 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 비(목조대왕구거유지)가 서 있다.(이목대는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있다.)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목조가 자라면서 이 곳 자만동에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비가 서 있다.

 

 

오목대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교장 댁 : 전주시 완산구 교동 57-4

 

오근풍 가옥은 현재 한옥마을에 몇 채 안 되는 'ㄱ' 자 집으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50여년전 오근풍씨가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에 기와 짙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세개의 별칭이 있다. 먼저 '궁녀였던 여인이 지은 집'이란 별칭이 있다.
그 근거를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조선 말기에 궁녀였던 한 여인이 자기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이 집을 지었다는데서 유래한다. '모과나무 집' 이란 별칭은 이집에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름에는 그늘이 생겨 동네사람들의 쉼터였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가 열렸다.
1997년 길이 새로 나면서 베어졌다. 이집의 주인인 오근풍 어르신은 중앙여고교장을 역임한 이후
'오교장 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본 가옥은 1940년 완공됨.

 

 

한옥마을 꽤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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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인여행블로거. 경상남도블로그 따오기 기자단 2기(2010). 2011,2012 경남이야기(경상남도 블로그) 팀블로그,2013년 경남이야기 팀블로그로 활동, 2015.9월부터 양산관광sns홍보단 활동. 2015년 양산시장표창장 수여.2016년,2017년 제3기,4기김해 sns서포터즈. 밀양시2기sns기자, 창원시4기sns기자로 활동중 연락처decemberrose71@hanmail.net www.facebook.com/seongja.ki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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