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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오늘 딸아이의 핸드폰을 사러 갔습니다. 아이가 얼마전부터 핸드폰을 사 달라고 매일 노래를 불렀지요.
주위의 친구들은 핸드폰 없는 애가 별로 없다. 한번씩 늦어지면 걱정되지 않느냐며 반문합니다.

 

올 해 들어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수가 더 는것 같습니다. 제 주위를 보아도 초등 3학년 입학때 사준
사람부터 2학기가 새로 시작되어 사 준 사람들까지 하나씩 하나씩 늘어갔습니다.

우리부부는 원래 중학교 1학년이 되면 핸드폰을 사 줄거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핸드폰이 전자파가 강한 물건이고 요금도 내야
하고 해서 아이들이 가지기엔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위킹맘은 예외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었지요.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갖고 싶은 마음이야 알지만 갖고 싶다고 덥석 사줄수는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핸드폰은 사치고 사 줘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습니다.

초등 3학년이 되니까 아이들이 키도 더 크고 성숙해졌습니다. 심심찮게 뉴스에서는 아동 성에 관한 사건이 일어나서 부모들 모두
불안에 떨었습니다. 완전히 커 버리기 전까지는 놀이터에 나가 노는 것도 마음이 편칠않고 하교길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아이가 크는만큼 행동반경도 더 커져버렸습니다. 한번씩 청소하고 정리정돈 하느라, 친구집에서 논다고 귀가시간보다 늦어질때도
있었습니다. 어떤아이는 성숙한 외모라 중,고등학생 남학생이 학원까지 따라온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을 졸였겠습니까?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를 하루종일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런이유로 주위 사람들은 하나 둘씩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아이가 핸드폰을 사달라면 강력하게 ' 중 1에 사주마' 하던 남편이 저보고 딸아이 핸드폰을 사주라는 겁니다.
궁금한 생각이 들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아이가 커가는 걸 보면서 걱정이 되더랍니다.
그런 찰나에 남편의 후배를 만났는데 후배가 요즘 같은 세상에 핸드폰은 필수라면서 딸아이 핸드폰도 안 사준다고 난리를 치더랍니다.

남편은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겠지요. 아마 자식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나 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를 그냥 방치하면 안되겠구나 . 이런 생각이었을거에요. 

결국 핸드폰은 아이에게 사치가 아니라 아이와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고리라는 걸 깨달았나 봅니다.

남편의 결심에 제 뇌리를 스치는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영화 '아저씨'에서 여자아이가 납치되어 나쁜집단에 팔려가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은 장기매매자에게 팔리고 마약을 제조하면서 시름시름 아파갑니다. 결국 장기를 팔아야 할 운명입니다.

아이가 있는 부모로서 극의 설정은 너무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아이 우리 부모가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중 1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딸아이 핸드폰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생각보다 요금은 청소년 요금제가 잘 되어 있어서 그 한도 까지만 전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무료폰을 골랐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 아이들 참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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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랜만에 일상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오늘은 운전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가 운전면허를 딴 건 2007년 11월 입니다. 
남들은 20대에 면허 딴다고 난리부르스를 추는데 저는 결혼하고 애키워놓고 운전학원비가 만만찮게 올랐을때 면허 딴다고
난리부르스를 췄습니다. 지금은 면허 시험이 좀 간단해졌다는데 제가 면허시험 칠때만해도 주행시험까지 있어서 면허따기도
어려웠고 학원비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학원비가 80 몇 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어쨋든 실제 주행까지 시험에 넣어서인지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 실제 운전에는 빨리 적응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운전하는 여성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운전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 운전하는 여자는
참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능력있게 보이고 뭔가 자신만만하게 보이고 그렇게 멋져보일수가 없었지요.
하긴 2000년대에 여성들도 운전 못한다면 ' 여태 그것도 안하고 뭐했어' 이런 눈빛을 안 받을수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가 운전을 못한다고 하니까 '엄마는 그것도 못해'라고 했습니다. 저 자신도 생활에 엄청난 불편함을 느꼈지요.
운전을 못하니까 마트를 갈때도 남편에게 같이 가자고 졸라야 했습니다. 남편의 일정에 맞춰서 시간을 좀 맞춰야 했지요.
남편은 쇼핑을 싫어하는데 억지로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내 몸이 아니니까 가자고 졸라야하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갑자기 애들이 아파 병원을 가야 할때도 남편이 출근하고 없으면 집에 놀고 있는 차를 놔두고 택시를 타야했습니다.

또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친정 식구들 언니네들과 외식을 하러갔습니다. 모임이 있으면 남자어른들은 술을 마시게 되는데요.
형부는 술을 편하게 마시는데 남편은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차를 운전해야 했기 때문이죠.

또 여름휴가를 갔는데 1박 2일 동안 남편 혼자서 운전을 계속했습니다. 남편은 수영도 하고 그 전날 알콜도 약간 섭취해서 피로에 
절었는지 자꾸 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제가 운전면허를 땄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쨋든 이런 이유로 운전면허를 따려고 카드결재를 했습니다.지나온 나의 삶을 생각해 보니까 소극적으로 살았던것 같았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그 때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안 하면 평생 운전면허 따진 못할것 같았습니다.
어느정도 일은 저질러야 ,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전면허를 등록했다고 하자 남편의 표정이 그다지 좋아 보이질 않았습니다.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면허 따는건 좋지만 거금이 드니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닌거죠. 그래도 슬쩍 스쳐가는 표정에는 부인이 운전하면 좋을것 
같다는 표정이 엿보였습니다.

운전연습은 참 재밌었습니다. 커다란 차를 내가 손과 발 조작만으로 움직일수 있는게 신기했습니다.
운전을 시작하고 도로에 나가보니 참 피곤하고 보통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장이 덜컹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아찔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밤마다 운전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직 운전이 초보수준이라 남편은 온전히 나에게 운전을 맡기진 못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운전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가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귀찮은일도 있었습니다. 운전을 하니 남편이 출장갔다 오면 밤 늦게라도 마중을 가야했고 친정부모님,시부모님 심부름도
더 해야했습니다.
때론 쉬고 싶어도 운전을 해야하는 피곤함도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남편이 가족을 위해 운전해야했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올 해 제천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제천까지 세시간 거리였습니다.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요. 1박 2일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다 합하면 하루종일 운전하는것과 같았을겁니다.
남편이 운전하다가 피곤하면 내가 ,다시 남편과 교대를 하면서 번갈아 가며 운전을 했습니다.
남편은 혼자 운전해야 하는 압박감에서 심리적 육체적으로 해방된 듯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위에서도 남편은 조수석에서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이제 남편은 마누라가 운전하니 편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제천여행을 끝낼즈음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전국일주 할까? "

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 좋아 , 전국일주 가는거야 !!!  어디든 가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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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큰할머니 댁엔 신기한게 많다.
이름모를 이쁜 꽃도 있고 커다란 사다리도 있다.


사다리는 주택지붕으로 올라가게 놓여져 있었다.
아파트인 우리집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사다리는 어서 지붕으로 올라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겁이 없는 내가 먼저 올라가 보았다.
태권도를 시작한 나는 요즘 더 씩씩하고 활달하다.

지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모든게 발 아래다.
이웃집도 골목길도 슈퍼도 모두 발아래다.
저 멀리 시장도 보인다.



지붕에서 제일 높은 곳에 이렇게 걸터 앉으니 말을 타는 것 같다.
떨어질 염려도 없이 안전한 느낌이다.
저 쪽 풍경도 멋지다.


누나가 위험하다고 얼른 내려오라고 한다.
난 재밌다고 누나더러 올라오라고 한다.


지붕이 이렇게 아늑한 곳인지 몰랐다.
지붕위에 엎드려 본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내려다보고
그저 통쾌하고 시원하다.


누나가 용기를 내어 올라왔다.
누나도 편안하게 앉아본다.


잔디밭에 엎드리듯이 지붕에 엎드려본다.
포즈가 괜찮은데?


우리 남매가 지붕에 올라간 걸 본 사촌 진우도 지붕에 올라가고 싶어한다.
작은어머님은 위험하다고 설득중이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것 같다.
사촌도 지붕에 올라오려고 하고 어머님도 그만 내려오라고 하신다.
이제 그만 내려가볼까?

이번엔 누나가 말린다.
지붕에서 더 놀고 가자!!

덧) 어머님께서 저 사진들을 보고 하신 말씀, "  CF 한 장면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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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며칠전 점심약속이 있어서 외출하였습니다. 마침 그 날은 남편이 쉬는날이라서 집에 있었지요.
학원마치고 집에 올 아들이 걱정되었는데 남편이  집에 있으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외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에 라면 냄새가 고소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라면을 끓여 먹은 거였어요. 아들도 학원갔다가 집에 돌아와 있었어요.

외출후 아이들 간식을 챙기는 나에게 남편이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냅니다.



남편이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려는데 아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

" 그래. 잘 갔다왔니? "

" 라면 끓이는데 먹을래? "

" 아니요... "

남편은 아들이 먹지 않는다니까 라면 하나를 끓였습니다.
라면이 다 끓어서 먹으려고 상을 차렸습니다.

안먹겠다던 아들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는지 

" 무슨라면이에요? " 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 삼양라면 "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아들은 먹겠다면서 젓가락을 들고 옵니다.
남편은 라면을 많이 먹고 싶었지만 아들이 먹겠다니 라면을 나눠먹습니다. 모자란 부분은 밥을 말아서 충당했습니다.

남편은 아들이 '삼양라면'이라서 먹는다는 말에 궁금증이 생겼답니다.
삼양라면의 맛이 순해서 그럴까?  혹은 아들이 인터넷에서 촛불에 얽힌 삼양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삼양라면을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후자의 경우라고 추측하고 아들이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답니다. 

남편은 아들에게 궁금한것을 물어봅니다.

" 왜 삼양라면이라서 먹겠다고 했지? "

아들은 쉽게 대답을 하지 않다가 

" 아버지는 가수 누구 좋아하세요? " 라고 되물어 봅니다.


남편은 얘가 왜 이런질문을 하는지 의아해하다가  그냥 떠오르는데로 이야기 합니다.

" 아빠는 카라" 

아들의 대답에서 빵 터졌습니다.

" 저는 소녀시대니까 삼양라면 먹어요. "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저는 웃음보가 터져버렸습니다. 
9살짜리아이가 삼양라면 좋아할 이유가 소녀시대라는 것이 웃겼습니다.
소녀시대가 랄랄랄라 하면서 그렇게 삼양라면 광고 많이했는데 그것도 모르는 아빠도 웃기는군요.  
아빠는 온통 관심이 정치에만 가있나 봐요. 아이가 삼양라면을 좋아하는 이유가 아빠가 삼양라면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을거라고 생각하다니요.
아빠도 아이의 기준에서 볼 수있는 연습이 필요한거 같아요

근데 요즘애들 정말 빠른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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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초등학생들의 입학식이 3월 2일쯤 있었습니다. 3월은 아이들이 한 학년씩 올라가고 새 반에 배정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새선생님 새친구 새반,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 달이 3월이죠.
3월말까지의 어느 정도 적응기간이 지나가면 4월부터는 본격적인 행사들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행사중 하나가 바로 생일잔치입니다.
올해 2학년인 우리둘째가 이번에 생일초대를 받았는데요. 정말로 기뻐하고 떨리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다음지도로 맥도날드 위치까지 파악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요즘애들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군요)

저희 어릴때는 생일잔치를 잘 안했지요. 혹 가다가 생일잔치를 하는 아이가 있는데 초대하면 주로 집에서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집에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니다. 그때는 생활수준이 높지않아서 생일잔치까지 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거지요.
또 형제가 많다보니 아이가 귀하다는 생각도 별로 많진 않았습니다. 제 기억엔 초등5학년 쯤에 초대받은 기억이 나네요.

요즘 초등학생들 보니까 초등1,2학년 생일 초대가 피크더군요. 
저학년이니까 아무래도 엄마들이 어서 적응잘하고 친구 잘 사귀라는 의미에서 해주나 봅니다.거의 모든엄마들이 다 한다고 해도 무방할겁니다.  아이들이 집에 한두명이니까 아무래도 더 신경을 쓰고 생활수준도 많이 높아져서겠죠. 
저는 큰애 1학년때는 (2년전) 가족끼리 생일축하를 해주었는데요. 작년에는 큰아이의 열화같은 성화에 못이겨 생일잔치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받은 생일초대카드에 생일잔치에 올수 있는지 없는지를 문자달라고 하네요




참석가능하다고 제가 문자를 보냈더니

답신문자가 왔네요





생일잔치가 달라진게 있다면 생일초대 카드를 꼭 돌린다는겁니다. 카드를 사서 할수도 있고 본인이 이쁘게 꾸며서 할수도 있습니다.
'누구야 내 생일에 와라 ' 말로만 하는게 아니고. 카드로써 정중히 초대합니다 .
초대받은 사람은 선물을 준비해서 생일날  들고 갑니다. 선물은 보통 학용품이나 팬시용품 정도입니다.

아들이 생일잔치에서 게임하고 받은 선물


또 다른 점은 맥도날드나 롯데리아로 가서 생일잔치를 합니다. 세트메뉴를 하나씩 먹고 생일케잌을 커팅하고 거기 놀이방에서 열심히 놀고
모종의 게임을 몇가지 하기도 하고 다시 생일맞은 아이의 집에서 실컷 놀다가 각자의 집으로 갑니다.
아들은 이번생일잔치에서 컵쌓기 게임에서 이겼답니다. 그래서 위 사진의 열쇠고리를 받았답니다.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작년에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였는데요.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니까 맥도날드 같은곳에서 생일잔치를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집에서 하면 음식이 좀 푸짐하다는 장점이 있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는다는건 참 기분좋은 일일거에요. 한편으론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니까 이런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해서
하루를 할애해 노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생일잔치 문화를 보면서 정말 빨라진 우리아이들의 문화를 느낍니다. 
그 빨라진 문화의 속도만큼을 우리 어른들이 채워줘야 하는게 조금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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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며칠전 친정에 저녁식사를 하러갔습니다. 저녁식사로 돼지갈비재료를 사고 딸기 그리고 몽쉘을 2통 샀습니다. 
 몽쉘은 외할아버지가 집에 계시니 간식거리로 드리라고 사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화이트데이 전날이었지요.

 제가 결혼하기전 아버지의 고향에 같이 간 적이 있었지요. 그럴때마다 읍내 장에 들러서 꼭 사는게 있었습니다. 사탕과 과자류였어요.
시골에 남아 계시는 친척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해가 잘 안되었습니다. 할머니 , 할아버지께서 과연 과자를 먹을까
싶었습니다. 그 의문은 결혼후 친정아버지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젊었을때 과자나 사탕을 입에도 안 대시던 친정아버지가 초코파이나 사탕류를 찾으시고 즐기시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되면 자연히 활동도 덜 하게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면 아무래도 간식거리가 찾아지는가 봅니다.

 아이들이 외할아버지께 몽쉘을 갔다 드립니다.

" 외할아버지 이거 할머니랑 같이 드세요. "

" 너희 외할머니 살 찌니까 안 줘도 돼. "

" 안돼요. 할머니도 드려야죠. "

그러면서 아이들은 2가지 종류의 몽쉘을 골고루 섞어서 2모둠으로 만듭니다. 물론 아이들이 얻어먹을것 몇개를 빼고 말이죠.

아이들중 누군가가 한마디 합니다.

"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잘해주세요. 좀 챙기세요. "

" .... "

저희 아들도 한마디 합니다.

" 맞아요, 내일 화이트데이인데 할머니한테 초콜렛도 안주시면서. "

" 우리아빠는 엄마한테 초콜릿 줬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그런거 챙기셔야죠. "

외할아버지는 약간의 미소를 띄며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옆에서 듣고 있는 우리들은 웃음이 터집니다. 
외할아버지는 성격이 완고하시고 고리타분한 분이신데 그런분을 이길 사람은 아이들 밖에 없군요.

과연 내년에 외할아버지가 화이트데이를 챙길까요? 
그건 아니라도 할머니를 챙길까요?      정말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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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올해는 원숭이띠,쥐띠,용띠가 삼재라고 합니다. 

삼재는 위키백과사전에 의하면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유래된 재앙명(災殃名)으로 십이지(十二支)에 따른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서적에는 해석이 자세하지 못하다. 현실적으로 삼재때 운이 나쁜 사람 또는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이는 단순히 전자는 복삼재 후자는 악삼재로 정의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주에 삼합 혹은 반합이 존재하는 
사람중에 삼재가 와서 충을 하는 경우엔 사주에 따라서 큰 변화가 오는것은 당연한 이치로 여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삼재를 보는것이 아닌 개인의 사주를 년운 혹은 대운에 맞게 풀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어머니께서 삼재풀이를 하시자고 전화가 오셨습니다.  

" 별일없니 ? "

" 네, 어머니 별일없으시죠?"

" 응... 근데 올해 쥐띠,원숭이띠,용따가 삼재라는데 우리 집안에 삼재가 세사람이나 들었구나."

"  시아버지, 큰애, 둘째 까지 그렇구나 "

" 그래요 ? 어머니.  "

" 그래서 말인데 삼재풀이를 하려고 해. "

" 삼재풀이요? 어떻게 하는건데요?"

" 입던 속옷(런닝,팬티) 와 쌀 한말과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하네."

" 입던 속옷이 필요하다고요 ? "

속옷을 달라고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사람의 삼재풀이니까 그사람의 체취가 묻은게 필요할듯 합니다.

" 응...나도 다 믿는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집안에 세명이나 삼재가 있으니 한번 해보려고...."

" 동서도 한다고 하네. "

"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  준비할께요" 

어머니께서 원하시고 아들걱정에 잠 못 이루실까봐 삼재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삼재풀이를 한다고 하니 제가 어릴때가 생각납니다.  친정엄마가 점을 보러 가신적이 있습니다. 
19세때 대학시험에 떨어질수도 있다면서 친구와 조금 멀리 떨어져라는 충고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저는 속이 뜨끔했었지요. 
 한창 사춘기라서 인생이 허무하기도 하고 친구와의 우정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좀 등한시 했지요. 그래도 대학시험에 떨어지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해 겨울은 정말 쓰라리고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설마했던 대학시험에서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마 자만했던걸까요?
아니면 충고를 여린마음에 너무 깊숙이 받아들였던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일치한다는게 참 신기했습니다. 무슨 요술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수 있었을까요?   정말 미래가 그림처럼 그려졌을까요 ?

며칠전 언니도  철학관에 아이들 부적을 쓰러간다고 합니다.  큰아이가 쥐띠이고 작은아이가 용띠이니 올해 삼재라는 겁니다.
언니는 부적이라도 써 주는게 엄마로서의 할일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 문외한이라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 아니 아이도 부적을 써야 하는거야 ? ' 

철학관에 따라 갔더니 부적을 쓰려면 사주풀이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어서 사주풀이를 해보니 현재와 미래를  다 이야기 해 줍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현재의 성향이나 성격등을 비스무리하게  분석해줍니다. 

 형부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어릴때 부모복이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것과 지금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겁니다.
어느정도는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니 정말 그 자체로 혹해버릴수 있겠더군요.
이래서 사람들이 점을 찾는것 같습니다.

철학관에서조차도  삼재풀이나 사주풀이를 100% 믿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먹기 나름이고 풀이는 그저 해석일 뿐이고 통계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동양역학은 어느정도 과학적인가 봅니다. 많은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고 많은 삶을 살아 왔습니다.
그새월과 사람들의 생들이  하나의 데이터가 되어 동양역학으로 사주풀이로 나타난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략적인 삶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의 경우 노력하지 않고 자만했기에 정신차려라고 시험에서 떨어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별로 노력 안했거든요. 시험에 떨어지는게 당연합니다.
살다보니까 조금 자만하거나 나쁜생각을 먹으니 일이 더 안풀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적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깨닫습니다. 세상에는 순리라는게 있다는 것을요.

 지난주 수요일에 어머니께 삼재풀이 할 속옷을 갖다 드렸습니다. 토요일에 삼재풀이를 하는데 애들 일때문에 같이 가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같이 못해도 어머니께서는 마음의 짐을 하나 덜으셨을것 같습니다.

사주풀이나 삼재풀이 이런 건 참고로만 하시고요. 마음의 힘듬을 덜어주는데 만족합시다 . 너무 믿지는 맙시다. 
더 중요한건 나 자신을 믿고 항상 다독여야 겠습니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살면 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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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아이 둘이서 지점토로 조물조물 뭔가를 만드는군요.
물감으로 색칠도 예쁘게 하고요.
뭘 만드나 했더니 우리가족 모습을 만들었군요.



엄마의 숱많은 파마머리와 머리숱 별로 없는 아빠모습입니다
엄마는 살짝 웃고 있고 볼도 발그레합니다.
피부색은 보통의 살색이고요



큰애얼굴인데 왜 찡그렸을까요.
물어보니 치과에 갔던 기억이 나서 그랬다네요.
작은애는 해맑게 웃고 있네요.
아이를 표현한다고 그런지 피부색이 약간 볼그스름하네요.
표정도 훨씬 귀여운 느낌이 나지요.




붉은 튤립꽃과 나무, 비행기까지.
원색적인게 눈이 시원합니다.

만든 지점토를 흰 달력에다 배치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그림이 만들어질까요?
제가 한다면 그림이 제대로는 안나올것 같습니다.



아이의 지점토 그림이 완성됐어요.
역시!!! 아이들의 창의성에 박수를 치고 싶군요.
뭔가 그림이 나오지요?

비행기 타고 있는 사람은 아빠고요.
아래쪽에 나무와 튤립꽃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은 엄마, 큰딸, 작은아들입니다.
그럴듯한가요?

지점토를 달력에 배치하다가 아이가 거기다 싸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겠답니다.
이번엔 무슨 그림이 될까요?



짜잔~~~

와! 입체감 있고 화려한 색감의 그림이 완성됐네요.
정말 애들은 창의적인것 같아요.
아이에게 무슨 그림이냐고 물어봤더니
비행기타고 튤립과 나무풍경이 있는 제주도로 놀러가는 그림이랍니다.
가족여행 한번 갔다 와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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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곤하게 자는 아이들



  아이들이 애기때(보통학교가기전)는 엄마,아빠 옆에서 잠을 잡니다. 서양의 경우 아기때부터 따로 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집도 아기때는 같이 잠을 잤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고 부터는 따로 방을 주어 잠을 재웠습니다.
초등학생이면 충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침대생활을 하다보니 4명의 가족이 한방에
자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더군요. 침대에 2명 자면 딱 맞는데 4명이 끼어 잘수가 없는 것이죠.

 큰딸아이가 1학년 되었을때 침대를 사주고 이쁜 이불과 베게도 갖추어 방을 이쁘게 꾸며 주었습니다.
아이가 처음에는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혼자 자기방에서 1년간은 자더군요. 그래도 가끔씩 아이가 몽유병처럼 일어나 
아침에 보면 엄마아빠 곁에 있었습니다. 한번씩 안방에 자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서양의 양육방식이 생각나
아이를 달래 혼자 재우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둘째도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둘째도 자기방에서 자게 해주었습니다. 둘째는 누나가 자기방에 자니까 당연히 자야하는
걸로 생각하고 빨리 적응하더군요. 그런 생활이 한 다섯 달쯤 되었을까. 안방의 침대가 오래되어서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매트리스도 내려앉고 나무도 삐걱거리고 오래된 침대에 자다보니 허리에 무리가 왔기 때문이죠.
침대를 버리고 나니 안방이 한결 더 넓어지고 아늑해졌습니다. 잘때도 아이들이 옆에서 몸부림을 안치니 푹 숙면을
취할수 있었습니다. 보일러를 돌리면 방바닥의 온기가 온몸으로 전해져 뜨끈뜨끈하게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허리에 더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아이들은 낮에 놀이할때도 넓은 안방에서 잘도 재잘거리며 놀았습니다.
아이의 친구나 조카들이 오면 안방이 놀이터가 됐습니다.

밤에는 각자의 방으로 잠을 청하러 갔지요. 그런데 큰딸아이가 어느날 밤에 잠을 잘 못자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무섭다는 겁니다. 자다가 새벽에 잠을 깨는데 눈이 떠지면 혼자 컴컴한 방에 있으니 무서운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조카(딸)가 이모랑 꼭 붙어잔다는 말을 듣고 큰딸은 엄마곁이 그리워졌나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몸부림없는 편한 방에 자던 우리들은 아이를 자기방에 잘 재워보기로 했습니다. 아이와 같이 자는게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좁아서 싫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큰딸아이를 재우고 나니 작은아들도 재워달라네요.
밤에 할일이 하나 더 늘었지요. 초등아이 재우기. 이제 애 다키웠나 싶었는데 밤마다 재워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재우는건 약과였습니다. 잠을 잘 자는가 싶더니 새벽에 깨서 꼭 엄마를 부르는 겁니다. 이건 새벽마다 딸아이를 다시 재워야
하니 자는게 자는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한달보름 정도 반복하다가 드디어 우리부부가 백기를 들었습니다.

 안방에 가족이 다같이 함께 잠을 자자. 처음엔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요. 자다보면 큰애다리가 내배위에 있기도하고
작은애는 여기저기 굴러다니지요. 그래도 애들이 잠을 잘 자니까 마음은 편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 안방에서 같이 자니까 좋아?"

"네, 포근하고 따뜻하고 잠이 잘와요."

이말을 들으니까 내가 도리어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진작에 다 같이 안방에 잘걸 싶었습니다.
애들도 같이 자고나니 정서적으로 더 안정되고 매사에 기분 좋아보였습니다. 
우리부부도 처음에는 좁아서 조금 불편한 감이 있었지만 익숙해지니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더 정이 생기고 4가족이 더 똘똘 뭉친다는 결속감이 생기더군요. 같이 누워 친구나 학교생활에 대해 대화도
더하게 되고 잠든 모습보면 왠지 모르게 애들이 더 사랑스럽더군요.

...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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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주말저녁에 언니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언니네 애들과 우리 애들은 나이도 비슷해 잘 어울린다. 지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려고 하는데 주차할 곳이 마땅찮았다. 이리저리 주차할 곳을 물색하는데 제일 오른쪽 안에 자리가
 있어서 정면주차를 했다.  
저녁으로 맛있는 닭볶음탕을 해먹었다. 아이들도 맛있다며 잘먹었다. 딸아이들끼리는
 재밌게 밸리댄스도 하고 창작퍼포먼스도
하고 아들끼리는 컴퓨터 게임을 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언니와 tv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실제 상황과 조금 틀릴수 있습니다.

 한 세시간정도 놀다가 밤10시쯤 집에 가려고 주차장에 갔다. 지상주차장 제일 오른쪽 끝에 정면주차되어 있는
내차 뒤에 후진할 수 있는 공간만 남겨두고 차한대가 왼쪽편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우선 그 차를 밀어보았다.
차가 밀리지 않았다. 야무지게 사이드가 올려져 있었다. 다음으로 핸드폰번호를
확인해 전화를 해보았다.
음악소리만 흘러나올뿐 응답이 없었다. 두 세번 더 전화해도 응답이 없었다. 차선책으로 언니집에

전화를 걸어 @@아 %%%%번호의 차를 빼달라고 경비실에 얘기하라고 전화를 했다. 5분쯤 기다렸을까 20대정도로
보이는
경비실직원이 나왔다.

" 우리 아파트 차량도 아니고, 연락도 안되니 "

" 한번 봐 줄테니 빼보세요" 

" 뺄 수 있을까요 "

" 네, 몇번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면 될 듯 합니다."

" 네, 그럼 한번 해볼께요"

왠지 불안했지만 옆에서 된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서 시도해보기로 했다.
먼저 끝까지 후진을 했다. 뒤에도 차가 있고 내 옆에 그차가 제법 붙은 상태였다. 오른쪽공간도 그차와의 간격 밖에
남지 않았다.
핸들을 왼쪽으로 조금감아 앞으로 전진했다. 앞에도 차가 있어서 아주 조금 전진할수 밖에 없었다.
이쯤되면 나도 포기를
해야 되는데 그러질 못했다. 다시 핸들을 오른쪽으로 감아 뒤로 최대한 후진했다. 이렇게 몇번
 반복하다보니 내 옆면과 그 차의
왼쪽모서리가 1미리미터 정도 남기고 붙어버렸다.앞에도 차가 있어서 꼼짝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러는 사이 20분의 시간이
흘렀다.
 
" 이제 더 붙었잖아요. 어떡해요?"

경비총각은 해결이 안되고 일이 복잡해지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서있었다.
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분정도 있었을까.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차의 차주였다. 50대 아줌마였다.

차의 상황을 보더니 대뜸 이렇게 얘기한다.
미안한 기색없이 아주 당당하게

" 전화를 하지~~~"

"두 번이나 전화했잖아요."

그제사 가방을 열고 핸드폰을 확인하며

"내려오는데 전화 왔는가보네." 한다.

속으로 참 밉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를 빼려고 키를 꺼내며 바짝 붙은 차앞쪽을 더 쳐다보더니 "차 안 긁어먹었나?" 한다.

뭐야 이건. 싸가지는 다 팔아버렸나. 자신의 잘못은 생각안하고 자기 차 걱정만 하다니. 정말 화가 나 흥분됐다.
흥분돼서 제대로 말이 안나왔다. 내가 조금 긁어먹었어도 아줌마는 할 말 없는 상황이었다. 사이드 야무지게
올려놓고 전화도 안받고 20분 기다리게 해도 미안한 기색도 없는 내차가 제일 소중한 매우 용감한 한국아줌마였다.
거기다 차 빼는 아줌마에 할머니 일행 한분이 또 한마디 거든다.

"차 안 긁어먹었나?"


 할머니마저 똑같은 반응을 보이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 아줌마가 미안한 기색을 보였어도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거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않고 자기 차만 걱정하고  그래도 더욱더 당당한 모습이 화가 났다. 

도로에서도 한번씩 이상하게 운전하는 아줌마를 본다. 코너에 주차하고 도로 중간에 주차하고도 당당하다.
좁은길에서도 그냥 밀어붙인다. 끼어들때도 옆을 계속 주시하지 않는다. 같은 아줌마지만 그럴땐 욕이 절로 나온다.
여성들이 주로 가정에만 있다보니 사회성이 모자라는 건 이해한다. 사이드 안 올리고 중립으로 하는걸 모를 수도 있다. 전화도
못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가 안빠져 난감해진 상황을 몰랐을리 없다. 초보라 사이드 내리고 중립으로 하는걸 몰라서 전화 도 못 받아서 당당하면 안 되는 것이다. 최소한의 예절이 있다면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제발 최소한의 예절만 지켜주면 고맙겠다.

여러분은 이런상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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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인여행블로거. 경상남도블로그 따오기 기자단 2기(2010). 2011,2012 경남이야기(경상남도 블로그) 팀블로그,2013년 경남이야기 팀블로그로 활동, 2015.9월부터 양산관광sns홍보단 활동. 2015년 양산시장표창장 수여.2016년,2017년 제3기,4기김해 sns서포터즈. 밀양시2기sns기자, 창원시4기sns기자로 활동중 연락처decemberrose71@hanmail.net www.facebook.com/seongja.ki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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