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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터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그런 집을 지어요



요즘세대야 모르겠지만 이런 아름답고 포근한 가사에다 따라부르기 쉬운 음이라서 유명한 곡이다.

이 곡이 바로 조선 고종의 아들이자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의 10번째 아들인 가수 이석씨가 부른 노래다.

.



황손 이석씨는 현재 전주한옥마을의 촌장으로 승광재에 살고 계신다.



 현재 전주대학교 사학과의 객원교수로 재직중이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이시다. 대한제국 한성(서울시) 출신으로 호적명은 이해석(李海錫)이다.


황손으로 태어나 사회의 현실 경험부족으로 모후 및 다른 황손들과 함께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친일성향의 불손한 국민들의 태도로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하였다. 특히 친일파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인사들은 경복궁을 비롯하여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황실복원을 좌절시켜 궤멸시켰다고 전해진다. 또한 친일 매국노 출신의 유신정부 박정희, 5공화국 초기 전두환 때에는 가족 모두가 거주하던 칠궁(七宮,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서 강제로 퇴거당하여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이후에도 역사를 외면한 친일성향의 사회 분위기로인해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by 위키백과 >


의친왕이 예순넷의 나이에 낳은 열번째 아들인 이씨는 "아침 문안을 드릴 때마다 수염으로 뺨을 부벼 주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며 황실을 없애는 나라가 어디있냐고 얼마저 여유만만 프로에서 나와서 얘기하기도 했다.




승광재에는 황실에 관한 사진이 걸려있다.





의친왕 :  전주. 초명은 평길(平吉). 이름은 강(堈). 호는 만오(晩悟). 의왕(義王)·의화군(義和君)이라고도 한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귀인장씨(貴人張氏)이다. 1891년(고종 28) 12월에 의화군에 봉해지고, 1893년 9월 김사준(金思濬)의 딸과 결혼했다. 1894년 9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전승을 축하하는 보빙대사(報聘大使)로 일본에 갔다가 다음달에 귀국했다. 그는 1895년 특파대사에 임명되어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을 순방했다. 1900년에는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대학교 특별과에 입학했으며, 그해 8월에 의왕에 봉해졌다. 1905년 4월 미국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여 육군부장(陸軍副將)이 되었으며, 그해 6월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1919년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과 모의하여 상해임시정부로 망명할 것을 결정했다. 이때 김가진(金嘉鎭)·전협 등과 함께 33인 명의로 최후의 1인까지 항전을 벌일 것을 강조한 선언서를 준비했다. 그해 11월 탈출을 감행하여 압록강을 건너 중국 안동(安東)에 도착했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강제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으며, 그뒤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도일(渡日)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하에 살면서도 배일정신(排日精神)을 고수했다. <by 위키백과>




의왕과 장남 이건공 이우공 사진, 의왕비 연안김씨와 이건공,의왕의 딸 5녀 이해경씨와 그의 모 사진

의왕의 의화군의시절, 의왕의 이경길(의왕의 8남) 황손과 이석 황손




의친왕의 자녀, 이구황세손과 이방자여사, 종묘에 참석하는 순종,젊었을때 의친왕



승광재를 방문해 이석 황손을 뵙고 싶은 사람은 이석 황손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황제 어세,의왕(고종황제5남),영왕(고종황제7남,1907년에 황태자에 책봉),순종(고종황제2남),고종황제사진



순종황제 사진



승광재는 조선 마지막 황실에 관한 역사를 돌아볼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승광재에서 조선의 비운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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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옛날부터 있었고 사람들에게 만남을 부드럽게 해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해준다.

때론 과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술이 없다면 만남이 얼마나 재미없을까 싶다.






전주한옥마을을 하나하나 꼼꼼히 둘러보다가 전주전통술박물관을 만났다.

박물관이라는게 어떤 특정한 것을 자세히 보여주는것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전통술에 관해 궁금한것을 자세히 모아놓았다.


술의 기원은?

<인간과 술의 만남>


과연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을까? 

옛문헌의 전설과 신화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인류보다 원숭이나 동물들이 먼저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태곳적에 과일나무 밑에 바위틈이나 웅덩이에 무르익은 과일이 떨어져 쌓이고, 문더러져 과즙이 괴이면, 자연에 존재하는

 효모에 의하여 발효가 일어나 저절로 술이 빚어지게 되었다. 주변을 지나던 동물들이 목을 축이느라 웅덩이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가끔 아파리카에서는 코끼리나 멧돼지 등이 자연발생적으로 고인 술을 먹고 휘청거리고, 딩구는 것이 발견되어 

진다고 한다. 영리한 원숭이들은 우연이 마신 술 맛에 반하게 되었고,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직접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하였다는데, 그 방법은 과일을 이용하여 바위틈에 담아 술을 만들었고, 특히 놀라운 것은 도토리를 씹어서 술을 담그는 것을 발견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으나, 술은 인류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시대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음용하여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유적에서 술빚는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문자로 기록된 고서중에 술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기록한 전설적, 신화적 내용이 많이 발견된다. 여하튼, 영리한 인류는 술의 발생 비밀을 인간의 것으로 소화하여 신비의 음료를 제조하게 되었고, 이 쓴 맛의 액체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행동에 놀라운 영향을 끼쳐오고 있습니다. 또한 무수한 세월이 흘렀으나 기본적인 양조기술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까닭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 당화기술의 발달>


옛 유적으로 보아 B.C 6000경부터 인류는 와인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든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곡물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술을 빚게 된 것은 B.C.4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인간이 과일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던 방식에서 곡식을 이용하기 까지는 20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오랜시간이 걸린 이유는 알콜발효란 당을 효모가 섭취하여 알코올을 생산하는 과정인데, 과일성분은 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곡물에는 전분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곡물에 들어 있는 전분은 효모가 직접 이용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술이 만들어 질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곡물로 술을 빚기 위해서는 전분을 분해하여 당화(糖化)하는 과정이 선결되어야만 했다. 당이란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생성하는 것으로 포도당, 엿당, 젓당 등이 있고, 이들 단당 중 대표적인 포도당은 포도 등의 과즙에 단당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은 당을 전분형태로 씨앗이나 곡물의 뿌리에 저장하는데 전분차체로는 발효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술을 만들기 위해 당화를 행하였을까? 당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보리나 수수가 발아할 때 생성되는 당화 효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서양의 맥주, 위스키를 제조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곰팡이가 자라면서 발생시키는 당화효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동양의 막걸리, 약주, 청주, 소주 등이 있다.

이러한 당화 방법의 발견은 양조기술의 발달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서양의 맥아와 동양의 누룩이 술도가의 신주단지처럼 여겨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 왜 낮술이 잘 취하는가?>


낮에 마시는 술이 잘 취한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점심 식사때 마신 반주 몇 잔에 이상하게 금방 취하는 일이 있다. 어째서 적은 양의 술이라고도 낮에 마시면 빨리 취하고 저녁에 마시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 여기에 흥미있는 실험을 한 것이 있는데, 하루 중에 여러 시간대에 쥐에게 알콜을 투여하여 그때의 신체조직의 감수성을 조사한 것이다. 이 실험에 따르면 알콜의 감수성에는 하나의 리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장기의 알콜 감수성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은 저녁의 활동기이고 그것은 하루 중 감수성이 가장 낮은 시기에 비하여 7배나 되었다. 또한 뇌의 감수성은 쥐의 활동기의 중간에서 후반 즉, 한밤중에서 새벽녘에 걸쳐 가장 높았다. 이것을 인간의 생활 패턴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장기의 감수성이 고조되는 것은 아침이고 뇌의 감수성이 높아지는 것은 밤이라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해 아침이나 낮의 술은 몸에 영향을 주고, 밤의 술은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낮술에 취하는 것은 단순한 기분만은 아니고 생리학적으로도 확실히 근거가 있는 모양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우선 술을 왜 술이라 부르는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술자리에서 술의 어원과 전통술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인정받을것이다.


술은 일반적으로 알코올 성분이 있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를 총칭하는 것이다.

<주세법> 상에서는 알코올분 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한다.술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달해온 가장오래된 가공음료 중 하나이다.


술의 어원은 "수불 - 수블 - 수울 - 수을 -술 "


알코올 발효가 이루어질 때 쌀,누룩,물이 혼화된 술덧에서 열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품이 괴어오르며 부글부글 끓는 현상이 일어난다.


원래 물만 있던 항아리에서 열이 나면서 끓는 현상을 보고 "물에서 불이 난다. - 수불 " 이 언어학적 변천과정을 통해 오늘날 "술"이라는 단어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통술 빚기 과정이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잘 되어있다.


백세 및침지 : 쌀의 성분 중 전분 이외의 영양분이나 불순물 제거하는 작업


고두밥 짓기 : 누룩의 효소에 의해 분해,당화가 용이해지고 아울러 발효가 원활해 지도록 곡물을 잘 익힌다.


고두밥 냉각 : 재료는 얼음처럼 차갑게 냉각시킨다.



항아리소독 : 술을 담을 항아리는 연기소독, 수증기 소독 열탕법등으로 소독한다.



재료혼화 : 쌀,누룩,물을 잘 섞어준다.


항아리에 담기 : 술덧을 항아리에 담는다.


보쌈하기 :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여 발효를 시킨다.


술독 냉각하기 : 발효가 끝난 술독을 10도 이하의 온도로 냉각한다.


후발효 :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서늘한 공간에 30일간 후발효한다.


 


전통주는 그 형태에 따라 탁주와 청주, 소주(증류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술독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받아내면 ‘청주’이고 용수를 박지 않고 그냥 걸러내서 얻은 뿌연 술을 ‘탁주’라 합니다. 흔히들 탁주를 막걸리라고 하는데 ‘막걸리’는 탁주를 거를 때 물을 넣어서 ‘막 걸렀다’해서 ‘막걸리’라고 합니다. 즉 ‘탁주’는 물을 넣은 것이 아니고 막걸리는 물을 첨가한 것을 말합니다.

‘소주’는 청주, 탁주 등을 가열하여 증류기(소줏고리)를 통해 얻은 도수 높은 술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로 높은 도수의 주정을 만든 뒤 물을 타서 희석시켜 만든 것으로 쓴맛을 줄이고 가미하기 위해 각종 식품 첨가물을 첨가한 것입니다.<전주전통술박물관 홈피에서>









술에 관한 제례용기가 진열되어 있다.



술에 관해 궁금하고 체험을 원한다면 전주전통술박물관으로 가면된다.


http://urisu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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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을 돌다보면 최명희 문학관을 만난다.

 

 

 

최명희씨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전주한옥마을에 와서야 최명희씨가 전주출신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게되었다.

 

 

최명희 작가에 대해 조금 알고 가자.

 

"전주는 작가의 고향이자 문학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전주 풍남동(당시 화원동)에서 태어난 작가는 풍남초등학교

(1960년 졸)와 전주사범학교 병설여자중학교 (1963년 졸), 기전여자고등학교(1966년 졸)를 거친 뒤, 2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다음 1968년 영생대학(현 전주대학교) 야간부 가정과에 입학하여 2학년을 수료했다.
이 기간 중 작가는 모교인 기전여고에서 서무직에 종사하기도 했다. 1970년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해

 1972년 졸업과 동시에 기전여고에 교사로 부임하여 서울 보성여고로 옮기기까지 2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혼불』 출간
이후, 1997년 전북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12월 11일 몹시도 차고 매운 날, 지병인 난소암으로 영면(永眠), <전주시민의 장>으로 장례 후 모교인 전북대학교 부지 건지산 중턱에 안장됐다. "

 

 

 

 

최명희길과  생가터 가는길은 전주한옥마을내의 동학혁명기념관 → 경기전 뒷담 → 이어지는 좁은 길 →

 한 중간에 생가터 비 → ‘ㄴ’자형 골목이 최명희 길 → 길 끝 최명희문학관 후문 으로 이어진다.

 

 

 

 

최명희 작가의 대표작 혼불은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양반가의 며느리 3대(代)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발표 1996년 12월 전10권 완간
수상 단재상,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된 직후부터 쓰기 시작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기념 2000만 원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혼불》 제1부가 당선되었고,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5부를 연재한 뒤 1996년 17년 만에 전10권(5부)으로 완간된 최명희의 작품이다.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로, 1930년대 전라북도 남원의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특히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작품으로,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寶庫),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학평론가 김열규는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 최명희는 이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죽었고,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

 

 

 

 

 

육필로 꼬박꼬박 원고지를 메워나가 1만2천장을 썻다니 그 정성이 소설에 나타나는게 아닐까?.

 

 

 

 

소설 혼불에는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재밌기도 한 표현이다.

 

작가가 쓴 만년필과 자,가위.원고끈

 

 

 

바깥에 쌓여진 방명록만 봐도 얼마나 많은이가 다녀갔는지 알겠다.

 

최명희 문학관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꼈다.

 

최명희 문학관  http://www.jjh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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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오목대에서 저쪽 건너편 그림이 그려진 육교를 건너면 마을 하나가 나온다.

 

 

자만마을 벽화갤러리라고 되어있는 벽화마을 이다.

 

 

흰 바탕의 회색갈매기가 생동감 있다.파란 지붕과 흰색이 어우러져 바다를 연상케 한다.

 

 

버스 정류소에 버스가 들어오는 벽화는 원래 벽의 굴곡으로 더 생동감 있어졌다.

 

 

돌고래 머리에서 선인장이 자란다는 상상은 동화적이다.

 

 

스머프 마을인지 버섯위에 집들이 재밌다.

어릴적 저런 상상화를 그린 기억이 있다.

 

 

숲속동물마을인지 동물 머리만 가지런한게 독특하다.

 

 

집옆 전봇대는 나무가 되어 동물들과 어우러져 있다.

 

 

꽃, 하트, 나비, 별 , 피아노는 소녀적 감성을 아주 잘 나타내는 소재이다.

 

 

 

튜울립이 금방 필듯한 벽화도 있고 크고 노오란 꽃잎이 유유히 날아다닌다.

 

 

벽화마을을 다니다 힘들면 벽화 의자에 앉아도 좋다.

 

 

파도를 아주 색감있게 살아있게 그린 작품이다.

피노키오 동화책에서 본것 같기도 한 그림이다.

 

 

나무계단을따라 올라가면 바람개비가 도는 언덕이 나온다.

 

 

벽돌담에 핀 하트꽃이 참 곱다.

 

 

꽃다발안에는 장난감도 숨어있다.

 

 

어느소녀의 꿈일까? 편안하고 달콤해보인다.

 

 

하늘을 날아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녀본다.

 

 

제일 재밋는 벽화는 창문을 키다리 아저씨가 선물상자로 변신시켜 들고 가는 벽화이다.

 

이목대도 한번 보고가도 되는 곳, 자만마을 벽화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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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은 경기전,전주향교,전동성당 등 문화유적이 가까이 있어 좋은곳이다.

한옥마을은 한옥과 낮은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어 70-80년대의 추억도 떠올릴 수 있어 좋다.

한옥, 낮은 주택, 그 사이의 골목 , 그 골목은 어린시절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요즘은 주로 마트나 인터넷몰에서 쌀을 사지만 옛날에는 이런 쌀집에서  쌀을 샀다.

쌀집아들은 그나마 잘 사는 집이었다.





낡은주택이고 주로 단층이었었다.




에스라인의 골목길이 주로였다.




시골에는 돌담이 많았었다.




벽화를 그린 낮은 주택도 이쁘다.




여기는 전주한옥마을에서 유명한 맛집, 팥빙수를 파는 외할머니 솜씨라는 곳이다.




어느 분식점은 고풍스럽게 나무로 간판을 달았다. 반들반들한 벽돌집도 옛날에 지은 것이다.




커피점과 옷가게가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조화를 이룬다.




경기전앞 악세사리 가게에는 볼 게 많아 여학생들이 붐빈다.




특히 나무열쇠고리가 예뻤다. 한지 고무신도 앙증맞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아주아주 오래된 당산나무가 있다.

여기서 해마다 제를 지낸다.




골목길을 지나가는 연인의 뒷모습이 더 애틋해보인다.




맛있는 꽈배기를 파는 전주한옥마을의 한 거리.




부채박물관 앞에는 아이들의 그림과 글이 있는 나무 작품이 있다.




전주한옥마을 공예명품길에는 예쁜게 많다.




도자기, 카페, 공방, 한지, 캘리그라피 등등등.




특히 바닥에 그려진 이것은 놀이에도 안성맞춤이다.


어릴때그려서 하던 놀이 .사방치기(시마차기) 놀이.


유산소운동도 되는 재밌는 놀이.



아이들도 즐거워한다.




도자기 가게에서 파는 예쁜도자기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무대문 너머 나무대문이 보인다.

재밌는 구조이다.




골목길에 서면 시선이 가운데로 집중되어서 인물이 멋지게 보이나 보다.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도 있다.


 전주한옥마을은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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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전에 이어서 전주향교를 방문하였다.

이곳은 성균관 스캔들등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인기명소이다.

 

본디 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대성전과 명륜당 앞뜰에는 약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각각 2그루씩 있다.

벌레를 타지 않는 은행나무처럼 유생들도 건전하게 자라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오랜 시간 학동들과 함께한 버팀목으로 자리했으니,학업정진과 임시합격을 기원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주향교 : 사적 제379호,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향교는 조선시대에 지방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학교이다.

전주향교는 세종23년(1441) 경기전 근처에 지었다가 전주 서쪽의 화산 기슭으로 옮겼다.그러나 향교가 전주성 밖에 있어

 다니기가 불편하자, 선조 36년(1603) 전라감사 장만이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경내에는 공자 등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모신 계성사,중국과 우리 나라의 훌륭한 유학자 분들의

 위패를 모신 동무,서무,유학을 가르치던 명륜당,그리고 학생의 기숙사로 사용한 동재와 서재등 많은 건물이 남아 있다.


 

 한컷씩 찍게 만드는 400년된 은행나무이다.

 

400년이라는 시간을 담고 있어 자꾸 눈이 가는 나무이다.



 

간재 전우(1847 -1922 )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율곡 이이의 학설을 계승한 성종심비등

새로운 성리학 용어를 만들었습니다.조선 최후의 유학자로 불리는 간재는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마침내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뜻에 따라 섬을 옮겨 다니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6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간재의 제자들은 이소 전주향교를 중심으로 왕성히 활동했습니다.


 




 

명륜당 앞의 이 나무는 성균관스캔들의 유아인이 올라가 사색을 즐기던 곳이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효를 위해 입신양명을 버린 월당 최 담부터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간재 전우와 그의 제자인 삼재(금재,유재,고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이곳 한옥마을은 선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선비체험길(2시간소요) : 최씨종대- 오목대 - 이목대 - 창암 암각서 - 한벽당 - 금재 고택터(전주전통문화관) - 

완판본문화과 - 강암서예관 - 양사재 - 남안재 - 전주동헌 - 전주향교


선비체험길(1시간소요) : 전주향교 - 남안재 - (동산길) - 오목대 - 이목대 - 창암 암각서 - 한벽당(한벽굴) -

 완판본문화관 - 전주동헌


 


 

명륜당 툇마루는 여행자가 잠시 쉬었다 가게 한다.

여기가 포토존이기도 한 곳이다.


 

문이 문을 보고 있는 구조. 옛 건물에서 많이볼수 있는 액자 구조이다.

 

아이들은 역사공부 좀 되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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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 전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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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전주 전동성당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풍남문을 가보았다.

 

 

풍남문은 전통시장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광장을 지나 보이는 저것이 풍남문이다.

 

 

풍남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1768)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하였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란 뜻이며 풍패란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위에 세운 누각 윗층의 기둥이 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수 있다.

 

 

 

전통적인 풍남문의 모습과 전동성당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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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전라북도

 

 

전주 한옥마을은 한옥사이 골목을 거니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외 여러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어 재미있다.

 

 

 

전주 전동성당을 먼저 가 보았는데 이름부터 뭔가 느낌이 오는것 같았다.

직접 전동성당을 보니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데 여기가 한국일지 의심스러운 건물이었다.

 

 

 

 

전주 전동성당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이 성당은 조선시대 천주교도의 순교터에 세운 성당이다.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언(야고보)

그리고 순조 원년(1801)에 호남의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풍남문 밖인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이들이 순교한 뜻을 기리고자 1908년 프랑스 신부 보두네가 성당 건립에 착수 1914년에 완공했다.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면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로마네스크 복고양식의 이 건물은 인접한 풍남문,경기전과 더불의 전통 문화와 서양문화 융합의 상징이 되고 있다.

 

 

 바깥전경에 놀라서 전동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어딘지 모르게 많이 본 풍경이다.

여기서 영화 '약속'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찍었다.

 

 

 

성당내부에 들어오면 모두 엄숙한 성당분위기에 압도된다.

 

 

색다른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성당투어를 마쳤다.

 

 

 

성당야경은 공포영화 처럼 으스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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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 한옥마을이 아름답다는 것은 다음뷰 블로그를 통해 올라오는 많은 사진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한국 구석구석 볼곳도 갈곳도 정말 많다. 전라도  쪽은 멀다는 느낌에 쉽게 가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가 보니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부산에서 3시간 정도면 가능했다.

 

 

전주 한옥마을 숙박지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예약을 해 놓은 백련마을 고택 체험관이다.

여기는 음식점도 같이 겸하는 곳인데 지은지 얼마 안되 깨끗하고 방이 많아 좋다.

한옥에서의 하룻밤이 기대된다.

우선 짐을 풀어놓고 한옥마을 구경에 나섰다.

 

한옥마을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낮은 함성이 흘러나왓다.

왜 사람들이 한옥마을 한옥마을 하는지 알것 같았다.

외국사람도 이 나즈막한 마을에서 평온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기 충분한 곳이었다.

 

 

한옥만으로 이루어진 집들사이 나즈막한 돌담들 사이로 기와가 보이는게 편안하고 예뻤다.

고층빌딩 숲속이 왠지 어지럽고 피곤한건 건물이 너무 높아 시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거다.

 

 

 

돌담 옆 장독대는 아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좁은 길을 벗어나 길이 만나는 네거리에는 네거리슈퍼가 있고 망고라는 예쁜 소품가게가 있다.

여기말고도 전주 한옥마을 전체에 몇군데나 더 있다.

 

 

정자가 있어 쉬었다 갈 수 있다.

 

 

마을 구경은 계속 된다.

한옥마을은 거의다 숙박, 체험위주의 집이다.

 

풍남헌이란 곳은 1934년 가옥이 신축된 이후로 두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줄곧 가정집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다가 2004년 풍남헌이란 이름으로 다도예절과 녹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 다원 및 한옥체험공간으로

 바뀌었다. 풍남헌 처마에 달려있는 비둘기 모양의 장식이 마음에 들어 집 주인이 가옥을 매입하였다고 한다.

당시 한옥마을 일대 집의 대부분은 비둘기 장식이 없이 喜자만 달랑 있었기 때문이다.풍남헌은 전통한옥 고유의 고풍스러운

 풍경을 자랑한다.풍남헌으로 개축할 때 곡선을 살리기 위해서 기와 와공도 놀랄정도로 상당한 양의 적심이 들어갔다.

또한 특수한 목재와 기와를 사용하여 고풍스러움을 한 층 더 강화하였다.

 

 

 

 

한옥마을을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있다고 한다.

평일 오후였는데 문화해설사와 함께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먼저 오목대로 모두들 함께 올라갔다.

오목대는 높아서 한옥마을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한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것이 추억에 젖게 하면서도 예쁜 풍경이었다.

 

 

 

 

이목대와 오목대가 있는 교동의 옛 이름은 자만동이었다.

 이목대는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대왕 이안사가 태어나

 살던 곳으로 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 비(목조대왕구거유지)가 서 있다.(이목대는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있다.)


오목대는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목조가 자라면서 이 곳 자만동에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 들러 종친들과

 전승축하잔치를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이를 기념한 고종의 친필비가 서 있다.

 

 

오목대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오교장 댁 : 전주시 완산구 교동 57-4

 

오근풍 가옥은 현재 한옥마을에 몇 채 안 되는 'ㄱ' 자 집으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50여년전 오근풍씨가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에 기와 짙은 흙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넓은 마당 한 가운데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세개의 별칭이 있다. 먼저 '궁녀였던 여인이 지은 집'이란 별칭이 있다.
그 근거를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조선 말기에 궁녀였던 한 여인이 자기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이 집을 지었다는데서 유래한다. '모과나무 집' 이란 별칭은 이집에 커다란 모과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름에는 그늘이 생겨 동네사람들의 쉼터였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가 열렸다.
1997년 길이 새로 나면서 베어졌다. 이집의 주인인 오근풍 어르신은 중앙여고교장을 역임한 이후
'오교장 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본 가옥은 1940년 완공됨.

 

 

한옥마을 꽤 많은 이야기와 볼거리가 있을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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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여행인여행블로거. 경상남도블로그 따오기 기자단 2기(2010). 2011,2012 경남이야기(경상남도 블로그) 팀블로그,2013년 경남이야기 팀블로그로 활동, 2015.9월부터 양산관광sns홍보단 활동. 2015년 양산시장표창장 수여.2016년,2017년 제3기,4기김해 sns서포터즈. 밀양시2기sns기자, 창원시4기sns기자로 활동중 연락처decemberrose71@hanmail.net www.facebook.com/seongja.kim.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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