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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밀면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 부산밀면이야기

커피믹스 2013. 12. 2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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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하면 돼지국밥 그리고 부산밀면이다.

냉면이 좀 질긴감이 있다면 밀면은 밀가루가 들어가 좀 부드럽고 부담없는 느낌이다.


 


여름이면 많이 들 찾는 밀면에대한 이야기를 전시회로 꾸몄다.

2013년,10월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부산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열린 '부산 밀면이야기' 특별전을 정리해본다.



전시회 여는 글에서  "지난 100년은 급격한 변화의 세월이었다.일제의 식민지배.한국전쟁,압축성장 시대로 빠르게 

변화되었다.부산의 현대사 과정속에서 가장 친근한 음식인 부산밀면에 대해 의미와 그 속의 삶을 살아온 일상을

 되새겨보고자 한다"고 함이다.



이호철의 소시민에도  피난시절 부산사람들의 냉면에 대한 인용이 있다.



부산에서 유명한 밀면집 사장님들의 밀면이야기를 들을수 있다.

당감동 사리원 밀면에서 서울에 올라가 장사를 한적이 있는데 서울사람들은 밀면을 모르니까 장사가 잘 안됐다고 한다.

냉면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국수하고 면발이 다르니까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더라고 했다.


밀면은 부산사람들이 열광하는 특성을 가졋다고 한다.

새콤달콤하면서 맵다가 하는게 기폭이 심한 그런 특성을.



서대신동 삼호냉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8월15일까지는 손님이 북적대다가 16일부터는 손님이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바람이 쌀랑하면 안된다고 한다.


거제동 국제밀면의 이야기:


부산밀면이 크게 입소문이 난 게 90년대 이후였던거 같아요.

그전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서 먹다가 그 뒤로 밀면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점이 생기고 또 장사가 잘 되고 그러면서

 많이 퍼진 거 같아요.

그 당시에 냉면집으로 상호를 걸고 냉면,밀면을 파는 집들이 부산에 60.70% 됐어요,지금은 그게 역전이 됐죠.



감천동 함흥냉면 : 밀면은 서민들에게 정말 부담없고 또 먹으면 맛있어요,부드럽고,

밀가루더라도 밀면은 맛있고 여름음식으로 최고에요.


부민동 등대시장 함흥냉면 ; 밀면 냉면은 재고가 없어요.그때그때 빼서 주는 거에요.

손님오면 바로 반축 쳐서 그것도 뜨거운 물로 해야 반죽이되고 예전에는 참 고생이 많았어요.




괴정동 해주냉면 : 62년부터 여기 괴정에서 장사를 했는데,처음에 여기 사람들이 냉면을 잘 못먹었다.먹으면서 이거 

고무줄이다.서울 가도 안 끊어지겠다 그랬다.밀면은 잘 먹었다.부드럽고 배고픈 사람 금세 배부르고 가격도 저렴해 

부담이 없다.처음 시작할때 밀면이 30원,냉면이 60원 했다.



 한그릇의 밀면이 식탁으로 올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이렇다.


4시~ 6시 : 육수 끓이기(밤새 우려낸 육수에 양념을 넣어 다시 끓이기)

6시~7시 : 시장보기(부전시장에서 가오리,배,무,파,오이 등 부자재 구입,육수에 우려낸 소 양지고기 다듬기)

7시~7시30 : 아침식사

7:30 ~ 9시 : 밀면,냉면 손반죽하기(양념장 만들기,달걀삶기)

9시~10시 : 김치담그기,고명 재료 다듬기(배,오이,삶은달걀등)

10시~ 11시 : 개업준비(테이블 정리 및 청소)

11시~ 20시 : 손님맞이 (밀 냉면 기계에서 면발뽑기,면발 삶아서 찬물에 씻고 그릇에 말아놓기,홀써빙)

20시~21시 : 가게정리 및  퇴근,내일사용할 육수 우리기 시작

21시~ 4시 : 취침, 휴식



당감동 시민냉면 : 여름에는 육수를 맨날 끓여요.육수 끓이는 날은 새벽 3시 - 4시 에 나와서 육수 끓이고  끓인 육수

 식혀서 육수통에 넣고 나면 아침 8시에요.그러면 집에가서 씻고 누워 자면은 오전 10시,11시. 그러면 다시 일하러 나와서

 저녁 8시- 9시까지 일한다.

또 다음날 육수 준비하려면 잠을 못잔다. 하도 힘들어 날이 안새면 좋갰다고 생각했다.



당감동 시민냉면 : 냉면하고 밀면은 밥하고 반찬 있는거하고 똑같다.

냉면이 먼저지 밀면이 먼저가 아니다.이북에서 넘어올 때 냉면만 왔거든

여기 사람들이 질긴 냉면을 안 좋아하니까 비율을 섞어가지고 밀면이 나온거지.또 밀가루 값이 좀 헐하고 싸니까.



우암동 내호 냉면 : 우리 1대 할머니가 1919년 함흥 부두가 내호에서 동천면옥이라는 냉면집을 하고 계셨대요

.전쟁나고 할머니가 냉면 말다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배타고 피란 나왔대요.처음에 할머니가 사기그릇 다섯개,솥,

냄비, 이런거 주워가지고 사과박스 이어붙인 테이블 만들어서 시작했대요.처음엔 기계가 없으니까 면은 뽑지도 못하고

구포국수 같은 말린국수를 처음에 시작했다고 해요.그리고 돈은 조금씩 모아서 영도에 가서 밀면 뽑는 기계를 구해가지고

시작한 것이 1955년도에요.



충무동 자갈치시장 함흥냉면  : 경남 하동에서 13살에 부산으로 왔어요.

그때가 67년도.여기 자갈치 시장으로 와서 이북에서 피란오신 할머니 밑에서 심부름을 해주면서 기술을 배웠어요.그때만

 해도 10평정도 가게에 다락이 있었어요.다락에서 잠을 자고, 일어서면 슬레이트 못에 머리를 찍히고 기어다니던 기억이 나요.



토성동 함흥냉면 : 1954년도에 반공포로로 나와서 부평동에 있는 대동강면옥에 들어갔어.반죽부터 했지,반죽이 힘 드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할라하거든,그래가 첫날에 2포대하고 그러다가 일주일 되니까 반죽이 익숙해지고 나중에 중앙냉면에서 

일할때에는 15분이면 밀가루 1포대 치대는 기라.

그때는 하루에 밀면이 3500그릇 나가야 하니까 하루에 25포대 30포대 치대고 그랬지.그때는 그 정도로 힘이 좋았어,

그때 중앙냉면은 밀면하고 냉면 같이 했고 제일냉면은 고급냉면을 하면서도 밀면을 많이 팔았지.



괴정동 내호냉면 : 그 당시 괴정동에 이북에서 피란온 분들이 많았어요.이북 사람들이 많고 하니까 순전히 냉면을 많이 먹었어요.아이들은 냉면은 질겨서 못 먹겠다 하면서 밀면을 많이 먹었어요.지금은 2세.3세들이 와요.1세대들은 다 돌아가시고 할머니,아버지 따라와 먹던 기억을 하며 많이들 찾아와요.



냉면집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 생생하다.

그시절로 돌아간 듯 하기도 하고

옛시절 차림표를 보니 밀면이 2000원 한다.

양은주전자에 육수가 담겼을테고.



분식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재밌다.

육체미 선수모습과 엄마와 아들이 면을 먹으며 즐거워하는게 재밌다.



낡은 저 쇳덩이의 냉면,밀면 기계에서 수많은 밀면이 만들어졌다.



대야가 닳아서 찌그러지고 세월의 흔적이 장난아니다.


 

<죽과 돼지국밥, 구포국수에 관하여>


죽이란 원래 곡식에 물을 많이 붓고 푹 퍼지도록 끓여 만든 반유동식 음식이며 별미음식 환자의 회복식으로 즐겨 찾았으나. 전쟁이나 기근에는 구황식으로 찾는 대표적 음식이기도하다. 이는 곡식이 부족할 때 최소한의 곡물로 많은 양의 음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때에는 부평시장 한 모퉁이에서 천막치고 의자 몇개 놓고 한집 두집 들어서기 시작했던 죽집은 한때 골목을 형성할 만큼 많았다.피란민들이 싼값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던 대중적인 음식이었으며 팥이나 녹두를 사용해 영양까지 갖춰 피란살이의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하루 종일 부두노동을 해야 하루 세끼 팥죽값 밖에 안되던 시절에는 이마저도 거르고 아껴야 했다.1970 - 80 년대 외국산 소비물품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부평동 깡통시장이 성황을 이룰 때 고급의 외국 소비재를 쇼핑하던 유한마담들이 별식으로도 부평시장의 죽집을 찾아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했으니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죽집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한집만 남아있다.


돼지국밥 : 돼지의 사골을 끓여 국물을 내고 돼지고기수육과 함께 먹는 탕반요리로써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지만 현재로선 가장 대표적인 부산음식이다.한국전쟁기 이북에서 넘어와 국제시장의 상권을 지배한 피란민들이나,시내 중심지의 피란노동자들은 고향에서 먹덕 순대국밥집을 찾았고 이북 피란여성들이 요리해낸 음식을 모방하면서 부산사람들의 기호에도 맞게 변형시킨 것이 지금의 돼지국밥이 되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돼지국밥은 설농탕이나 소고기 국밥보다는 가격이 싸지만 열량이 높아 한끼 식사로 든든하다.1970-80 서면지장,조방앞 버스터미널 주변,대학교 주변에 돼지국밥거리를 형성하면서 노동자들의 허기를 채우기도 하였다.그러나 돼지국밥은 지금이 가장 최전성기같다.정보통신의 발달로 부산 대표음식으로 유명해지자 소비량이 늘어나고 소비계층도 확대되어 갈뿐아니라 가게마다 독특한 맛으로 전국적인 맛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구포국수 ; 
구포는 조선시대부터 영남 일원에서 조세곡물을 거두어 한양으로 실어 나를 수운과 창고가 있어 매우 번창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만주지역까지 철도가 놓이자 이곳에 집하된 물산이 전국적으로 유통되어 유명한 곳이다.모여든 곡물로 정미공장과 제분공장이 성업하게 되었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국의 제분공장중 부산만 피해없이 조업을 계속하자 이곳 제면소도바빠지게 되었다.당시 제면소는 가내공업으로 조업하는 매우 영세한 수준이어서 구포시장 주변에는 2-30개의 작은 제면소들이 즐비해 있었다.전쟁이 끝나고도 농사짓는 사람들의 새참으로 국수는 가장 보편적인 음식이었다.기차를 타고 구포장에 온 영남일원의 농사꾼이 주요고객이었다.뿐만아니라 쌀부족에 따른 혼분식장려운동과 같은 정부시책으로 구포국수는 더욱 유명했다.구포는 지형적으로 작은 분지를 이루는 데다 홍수에 의한 낙동강의 범람이 잦아 습도가 높은 지역이다.이런 환경이 국수를 건조시키기에도 적합한 조건이고 건조과정에서 바닷바람이 타고 들어와 국수 면발이 짭짤하였다.특히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를 육수로 하면 별다른 고명없이도 담백하고 쫄깃한 국수 맛을 내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문화사랑방으로서의 다방

다방은 개항이후 근대문물의 유입과 함께 상류층의 문화 애호적분위기에서 생겨났다.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상업적인 용도로 변모하였다,전쟁으로 인해 문화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차를 마시고 쉬는 공간에서 나아가 종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다방에서 그림전시회,문학의 밤,영화의밤,출판기념회,환영회.강습회.송별회.추모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문화의 상징과도 같은다방은 다른 한편으로는 허영의 표상이기도 하였다.전방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군인들과 달리 음악이나 감상하고 커피를 마시러 한량이 모여든 다방은 전시분위기를 망각한 퇴폐의 상징이었다.헌병대는 수시로 다방을 습격하여 전시상황임을 일깨웠다.가난한지만 순수한 예술가들이 즐겨 찾은 다방은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의 밀다원,금강,스타,춘추 등이 있었다.그곳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을 이루어 전시에도 꺼지지 않는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밀다원시대(1955) 김동리 소설

1.4 후퇴로 내려온 피난지 부산에서 밀다원이란 다방을 중심을 거기에 모인 예술가들의 삶과 경험을 그린 김동리의 단편소설이다.1955년 현대문학 4월호에 처음 발표되었다.


 


대한도기에 새겨진 무늬는 전통적으로 아낙들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려놓았다.


 





임시수도의 정부는 사회 안정을 위해 굶주림에 지친 피란민에게 최소한의 먹거리를 제공해야 했다.하지만 un과 미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한 식량배급은 하루 1인당 2홉으로 턱없이 부족하였다.이때 등장한 것이 꿀꿀이죽이다.'유엔탕'이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음식 찌꺼기를 수거하여 다시 끓여 만든 것이다.꿀꿀이죽에는 햄과 소시지 등 육류까지 들어갔다.영양결핍에 직면했던 피란민들은 이를 소중한 영양 음식으로 여겼다.




판자로 만들어진 판자집은 그 시절 아주 소중한 집이었다.





부산의 역사를 뒤져보면 나오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래서 부산이 관광도시로서 더욱더 성장한거 같다.

앞으로 부산이 어떤이야기를 품을지 기대되는 도시이다.